"1997년 광양제철소 미니밀(전기로에서 고철을 녹여 일반 열연강판을 뽑아내는 공장)을 돌린 이후 처음으로 판매 기준가격을 내렸어요.


이런 추세라면 미니밀 가동 축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포스코 관계자가 5일 전해준 철강 경기의 한 단면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호황을 구가하던 철강업계마저 늘어나는 재고 부담과 가격 하락을 견디다 못해 감산이라는 비상 카드를 빼들었다.


산업계에 감산 바람이 불고 있다.


화섬 시멘트 철강업계에서 시작된 감산 움직임은 전 산업계로 확산될 조짐이다.


경기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고 있는 데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어와 시장을 교란하면서 가격이 급락,제품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것.


감산의 충격파는 당장 관련업계의 실적 악화로 반영될 전망이다.


실적 악화는 다시 긴축경영과 구조조정이라는 고강도의 처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포스코,미니밀도 감산할 듯


철강업계의 대표 주자인 포스코는 이달과 다음달에 스테인리스 열연강판 공장의 생산량을 각각 4만t씩 줄이기로 했다.


올해 당초 목표로 잡은 연간 생산량 160만t에서 5%를 감산키로 했다.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으로 해외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인하에 나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감산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포스코는 특히 광양제철소에 있는 미니밀의 생산량을 줄이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연간 190만t을 생산하고 있으나 시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감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저가의 중국산 일반 열연강판이 대량 수입돼 유통 판매점들의 재고가 급격히 불어나고 있고 가격까지 하락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재고와 시황을 보아가며 미니밀 가동축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이에 앞서 지난 4일 출고분부터 미니밀에서 생산한 열연강판의 판매 기준가격을 t당 59만5000원에서 58만원으로 1만5000원 인하했다.


미니밀 열연강판은 그동안 고로(쇳물에서 열연강판을 뽑아내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고급 열연강판과 같은 가격에 판매됐던 제품이다.


◆시멘트,재고와의 전쟁


내수 부진으로 재고가 급증하면서 시멘트 업계도 잇따라 감산에 나서고 있다.


현대시멘트는 지난 2일 단양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9월22일까지 가동을 멈춰 재고를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1일부터는 동양시멘트가 삼척공장 일부 라인의 가동을 중단했고 영월 단양 등 내륙에 공장을 둔 쌍용양회성신양회 역시 여름철 보수기간을 지난해보다 1주일 정도 늘려잡아 사실상의 감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동양시멘트 관계자는 "삼척공장 7개 라인 가운데 1호기 가동을 당분간 멈추도록 했다"면서 "이에 따라 하루 2만8000t이던 삼척공장 생산량이 10% 이상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시멘트 업계의 감산은 건설경기 침체로 재고가 급증한 데다 하반기 수요 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시멘트 재고는 365만6000t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재고량(277만4000t)보다 31.8%나 급증했다.


지난 5월 말 재고는 323만7000t(전년 대비 증가율 11.0%)이었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5,6월 성수기에도 재고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내수가 줄었기 때문"이라며 "하반기 수요 전망도 어두워 업계의 감산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화섬,설비 돌릴수록 적자


지난해부터 원자재가 급등과 제품가 하락으로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된 화섬업계는 계속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일부 고부가가치 품목을 제외하면 설비를 돌릴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올 들어 안정세를 찾은 듯 보였던 테레프탈산(TPA) 에틸렌글리콜(EG) 등 원자재 가격이 최근 유가 급등에 따라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자 화섬 업체들은 적극적인 가동률 조정을 통해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화섬업계 양대 축인 효성코오롱은 폴리에스터 원사의 하루 생산능력을 작년초450t과 290t에서 현재는 290t과 230t으로 각각 줄였다.


돈이 안 되는 범용 제품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확대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한국합섬 동국무역 등 중견 업체들도 가동률을 각각 34%와 50% 줄이고 수급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화의 상태였던 금강화섬은 지난해 아예 공장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화섬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가동률을 줄이거나 생산라인을 아예 철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범용 화섬제품은 이미 중국에 경쟁력을 빼앗겼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상황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생산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홍열·류시훈·유창재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