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만복 < 청와대 정책실 사회정책행정관 >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부동산 가격 오름세와 이를 둘러싼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아닌가 싶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노라면 경제의 관점에서 경제의 틀로만 풀려고 하는 모습이 조금 답답한 감이 있다. 국민들이 부동산에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회보장 또는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시각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국민들이 부동산 투자에 열중하는 요인 중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노후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고 그 수단이 부동산 투자라는 점이다. 이를 투기가 아닌 '노(老)테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해일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60세에 퇴직을 해도 25년 정도를 노후로 살아야 한다. 요즈음 같이 '사오정'이나 '오륙도'라는 신조어가 회자되는 사회적 여건에서는 30년 아니면 40년 이상을 대책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국민들은 불안해한다. 그러면서도 남은 긴긴 세월을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면서도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긴 노후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이다. 실제 한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64%가 노후를 준비하고 있고,특히 이 비율이 40대는 75% 이상에 이른다. 노후 준비수단은 단연 부동산이 최고라는 응답이다. 40대 중장년층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들은 80년대 중반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이제 20년 안팎의 직장생활 또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계층이다. 대표적인 노후 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에야 도입돼 아직 안정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노후의 적절한 보장수단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더욱이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다 보니 그 불안은 더해진다. 이제 남은 방법은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인식이 절박하다. 이것이 국민들을 부동산 투자열풍으로 몰아가는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상황은 가까운 일본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고도성장과 발전을 구가하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이후 벌써 15년 넘게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황의 이면에는 90년대 초에 고령사회에 이른 일본인들의 노테크 열풍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도쿄의 부동산 값이면 미국 본토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고 할 만큼 일본의 부동산 열풍은 대단했다. 인생의 3분의 1을 노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본인들은 '돈이 있으면 쓰지 않고 모으고,부족한 돈은 빌려'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것이다. 일본에는 '오팔(OPAL)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고령사회에서 소비의 한 주체로서 건강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노인들(Old People with Active Life)을 뜻한다. 연금이든 부동산이든 노후를 착실히 준비해온 일본 노인들은 노년을 활기차게 살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오팔족이란 말이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특히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는 그야말로 오팔이라는 무지개를 그리며 이를 쫓아가고 있고,이러한 현상이 노테크를 위한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다 후생연금이다 해서 우리보다 훨씬 튼튼한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한 일본인들이 그러했는데, 하물며 안정적인 사회보장 기틀을 잡기도 전에 고령사회에 맞닥뜨린 우리 국민들의 행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해법은 무엇이겠는가? 패러독스로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노후를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겠다며 노테크에 열중하는 국민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하루 빨리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하여 조기에 안정시키고 보다 두터운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부동산정책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