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웬 만년필.아…,아니네."


덴마크 코펜하겐 교외의 박스배어드에 위치한 의약품 전문기업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의 힐러로드공장.모텐 옌센 수석 연구원이 들어보인 제품은 만년필 모양 그대로였다.


뚜껑을 열고 인슐린을 주사하는 시범을 보이기 전에는 누가 봐도 패션 만년필이다.


만년필 촉이 아닌 주사바늘,잉크를 담는 카트리지가 아닌 인슐린 카트리지,주사용량을 표시하는 미터기가 없다면 말이다.



< 사진 : 어린이 당뇨병 환자가 노보노디스크의 노보펜을 사용, 인슐린을 주사하고 있다. >


노보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혈당 조절제)과 인슐린 주사기구인 '노보펜' 시리즈를 생산하는 글로벌 제약기업이다.


힐러로드 공장은 그동안 개발해 내놓은 10가지 노보펜 시리즈 중 '노보렛'과 '플렉스펜' 두 가지 제품을 자동 조립해내느라 여념이 없다.


몇몇 작업자와 초고성능 카메라가 공정을 점검하고 있을 뿐 공장은 완전 무인자동화로 돌아가고 있다.


주문에 따라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어서 별도의 창고도 없다.


"당뇨병 정복을 목표로 1925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노보펜을 개발한 1985년까지 60년 동안은 '레드오션'에서 헤어나질 못했지요.


하지만 노보펜을 개발한 이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블루오션을 만끽하고 있습니다."(모텐 옌센 수석연구원)


옌센 연구원의 말 그대로다.


현재 전 세계에서 350만명 정도의 당뇨병 환자가 노보펜 시리즈를 애용하고 있다.


특히 유럽지역의 당뇨병 환자 가운데 90%,일본의 당뇨병 환자 중 90% 정도가 노보펜 시리즈를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로 보면 당뇨병 환자의 55%는 노보펜 시리즈를 구매한다는 것.


이런 노보펜이 개발된 것은 1981년.당시 한 임원이 주사기에 일주일치 인슐린을 채우고 주사한다는 게으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잡지 기사에서 착안했다.


무려 4년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탄생됐다.


노보노디스크가 기존 주사기와 차별을 둔 영역은 너무나 간단했다.


노보펜 시리즈는 환자들이 사용법을 익히기가 쉽고 실제 사용하기도 편리하다.


정확한 양의 인슐린 주사가 가능하다.


디자인은 패션 만년필처럼 세련미가 넘친다.


전혀 주사기구 같지 않아 혐오감을 주지 않는다.


"노보펜 시리즈를 개발하기 전까지 환자들의 인슐린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와 간호사에게만 판매 마케팅을 집중해 오다가 발상을 전환한 것이지요.


인슐린 시장에서 인슐린 개발에만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다가 인슐린 주사기구로 새 시장을 개척한 것입니다."(모텐 옌센 수석연구원)


물론 경쟁업체들이 나타났다.


노보노디스크의 제품이 대히트를 치자 미국의 거대 제약사인 일라이릴리는 1990년부터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을 선점한 덕분에 제품 선호도는 노보노디스크가 월등히 앞선다.



< 사진 : 노보노디스크 직원이 덴마크 힐러로드공장에서 '노보렛' 제품이 조립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


노보노디스크가 지난 2001년 개발한 플렉스펜의 경우 환자 선호도가 80%.반면 일라이릴리의 동급 제품은 18%에 불과하다.


블루오션을 개척한 선발주자의 입지는 단단하기만 하다.


노보노디스크는 경쟁 대신 주사바늘을 더 짧고 가늘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만∼수십만번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아픔을 덜 느끼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지난해 길이 6mm,직경 0.23mm의 주사바늘을 개발,현재 노보펜3와 플렉스펜 제품에 채택하고 있다.


직경 0.23mm란 환자 10명 중 7명은 주사를 해도 거의 아픔을 느끼지 않는 수준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이런 제품과 기술력이라면 1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또 다른 거대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년필 형식의 인슐린 주사기구가 최근 미국 의료보험 적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


니나 닐슨 힐러로드공장 안내자는 "당뇨병 환자인 친구가 플렉스펜을 사용하고 있는데 불만을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일 년에 두세 번 당뇨병 환자들을 공장으로 초청해 플렉스펜 생산과정을 보여주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힐러로드(덴마크)=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