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그룹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돈을 내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구매자(purchaser),구입한 물건을 실제로 쓰는 사용자(user),구매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자(influencer)다. 기업들은 대체로 이 가운데 한 부류의 소비자 그룹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사무용품 업계는 기업의 구매담당 부서에 비중을 두며 의류업계는 실제 사용자들을 중요시 한다. 제약업계는 환자의 약품 선택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사에 포커스를 맞춘다. 인슐린업계도 다른 제약업계가 그랬던 것처럼 환자의 인슐린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사들을 타깃 그룹으로 삼았다. 업계는 의사들의 요구에 맞춰 더욱 순도 높은 인슐린을 생산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노보노디스크는 경쟁사들과 다른 각도에서 소비자 그룹을 바라봤다. 그 때까지 영향력자인 의사에게 두었던 초점을 사용자인 환자로 전환했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주목한 결과 이들이 병으로 공급되는 인슐린을 투약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주사기와 바늘로 적정량을 투입하는 데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으며 주사를 놓을 때 주위의 눈길도 부담스러웠다. 마약을 투약한다고 의심받을 때도 많았다. 휴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의사 대신 환자에게 초점을 맞춘 노보노디스크는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인슐린 투약기구 '노보펜'을 내놨다. 일주일분의 인슐린 카트리지가 내장된 만년필 모양의 노보펜은 주사기 방식과는 정반대의 가치곡선을 그렸다. 만년필 모양이라 의혹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으며 휴대하기도 매우 편했다. 카트리지가 내장돼 투약방법도 간편했다. 버튼 클릭으로 투약을 조절할 수 있어 시각 장애인들도 인슐린을 투약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의 가격은 기존 주사기 방식보다 비쌌지만 편리한 기능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이 앞다퉈 찾았다. 노보노디스크가 창출한 블루오션은 업계의 판도를 바꿨으며 이 회사를 인슐린 제조업체에서 당뇨병 치료 기업으로 격상시켰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