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국어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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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기업의 한국인 임원들이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재외동포를 채용하면 영어는 잘하는데 우리말이 서툴러 기대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듯해도 함축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결과를 빚기도 하고 쓰는 것도 잘 안된다는 지적이다.
거꾸로 국내에서 일류대를 나와 전공 분야의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도 해외유학 초기엔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심지어 상당기간 지진아 신세가 되기도 한다.
아는 게 아무리 많아도 말과 글로 적절하게 나타내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회사 어디서건 발표와 리포트가 중시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가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신입사원들의 국어 능력이 영 시원치 않아 힘들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말하기와 쓰기 실력이 모두 부족해 보고와 기획안 작성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가 하면 맞춤법이 엉망이어서 손봐야 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 모양이다.
젊은층의 우리말 구사 솜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서울대생들의 국어 실력이 형편없다는 뉴스가 나온 지 몇 년째고,지난해 8월엔 KBS 신입사원 공채 응시자의 절반 정도가 '한국어 능력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아 화제가 됐다.
고교 교무실 벽에 붙여진 반성문을 보면 "과연 고등학생이 쓴 건가" 의심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경쟁력 향상이라는 이름 아래 온 나라가 영어 배우기 광풍에 휩싸이면서 국어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입시 위주 교육으로 독서의 중요성이 깡그리 무시된데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마구잡이 글쓰기로 인해 문법과 맞춤법이 사라진 국적 불명의 언어가 생겨난 탓이다.
세상 어떤 민족도 제 나라 말과 글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채 살아남을 순 없다.
늦게나마 '국어기본법'이 제정돼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건 다행스럽다.
그러나 말하고 쓰는 능력의 근간은 듣고 읽기다.
방송의 막말을 막는 일과 책 읽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