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6자회담 복귀] (어떻게 성사됐나) 김계관·힐 극비회동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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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심야에 터진 평양발 뉴스로 공식 확인된 '6자 회담의 이달 말 재개' 뉴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베이징 회동'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극비리에 추진된 양측 6자 회담 수석대표인 두 사람의 만남은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의 방북 직후 6자회담의 택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깬 것이다.
힐 차관보는 10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에 앞서 베이징을 찾아 김 부상과의 만남을 추진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의 '가교' 역할이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9일 만찬을 겸한 장시간 회동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며 '벼락치기' 발표까지 논스톱으로 치달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수순의) 모양새는 10일 전부터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밝혀 두 사람의 만남은 물론 북·미 간 합의 내용에 대해서도 사전에 충분한 의견교환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6자 회담이 1년 넘게 공전하면서 회담 재개의 필요성과 절박함이 가중됐고 관련국간 외교적 노력을 통해 북한의 6자 회담 복귀가 거의 기정사실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흐름에서 북한을 회담장으로 돌린 터닝포인트는 지난달 16일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양면담이었다.
김 위원장이 이 자리에서 7월 중 6자 회담 복귀 용의와 함께 '부시 대통령 각하'라는 극존칭을 사용,6자회담 재개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악화된 북미 관계의 해소를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 이후 북·미 간 뉴욕채널과 남북한 주미대사의 회동 등 다각적인 외교적 활동이 더해지면서 6자 회담 재개의 날짜를 잡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