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국판 '동굴의 우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악마와 종교에 대한 중세 가톨릭교도들의 몰이해는 마녀사냥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낳았다.
가톨릭교도들이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주관적인 관념만으로 사물을 파악하려 했기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이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놓고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동굴의 우상'이라고 비판했다.
'동굴의 우상'은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2008학년도부터 서울대 등이 도입키로 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둘러싼 인식 차가 그것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서울대의 새로운 시험을 '공교육을 파괴하는 본고사'라고 비난한 뒤 "초동진압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도 여당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수들은 "당정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합리적인 논술시험을 본고사로 몰아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논쟁을 찬찬히 뜯어보면 실체는 없고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 강남 대치동 A학원 원장인 김모씨는 "본고사를 학력고사가 시행되기 전 국ㆍ영ㆍ수 중심의 대학별 고사라고 좁게 정의할 경우 서울대가 시행하려는 논술고사는 본고사가 아니며 대학이 자체적으로 출제하는 서술형 평가로 넓게 정의한다면 본고사의 범주에 든다"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지금의 공교육은 일부 대학에서 시행중인 논술시험 준비에 도움이 안될 정도로 이미 무력해져 있다는 게 수험생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새 대입안 발표 후 사교육이 더욱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참여정부는 '사교육을 부추기는 시험을 치른다면 대학이 갖고 있는 학생선발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를 교육 관련 정책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어떻게 출제하는 시험이 허용할 수 없는 본고사인지를 규정하고 정부가 출제범위를 '공인'한 논술시험을 공교육에서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길이다.
소모적인 '본고사' 논쟁이 계속되면서 학생들만 과중한 학습부담에 신음하고 있다.
송형석 사회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