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도권대책, 비전도 전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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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완 < 중앙대 교수 >
공공기관이전에 따른 수도권의 공동화를 방지하고 수도권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이른바 수도권발전대책이란 것이 제시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수도권의 불만과 지방의 반발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방황하는 정부의 모습이 역력하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뾰족한 방법은 없고,이전에 한두번 써먹었던 그럴 듯한 그림들을 여기저기 모자이크해서 수도권의 미래상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규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대책들을 제한적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입안자 본인들도 결코 믿지 않을 내용들을 국민들은 믿어주리라 확신하는 그 순진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역정책에 관한 한 우리 정책당국자들은 아직 70년대 패러다임에 젖어 있다. 이른바 경쟁적 지역개발론을 굳게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가는 지역의 성장억제를 통해서만 낙후지역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잘사는 지역이 성장과실을 독점하기 때문에 못사는 지역들이 발전기회를 가질 수 없다고 분개한다. 비수도권지역의 어려움은 순전히 수도권의 발전을 규제하지 않는 탓이라고 믿는다.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는 균형개발의 해결책이 수도권의 지속적인 규제에 달려있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수도권의 규제완화를 주장하거나 수도권의 자율적 관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반(反)균형론자로 몰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대부분 선진국의 지역개발 패러다임은 이미 경쟁적 지역개발론에서 개성적 지역개발론으로 전환되었다. 낙후지역 개발은 앞선 지역의 성장과일을 나누거나 뺏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선 지역이 갖지 못하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 특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패러다임 하에서는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균형개발'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든 지역이 특성을 살려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른바 '조화로운 개발'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비수도권은 비수도권대로 특성을 살린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하에서 중앙정부의 역할은 낙후지역이 스스로의 틈새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권한과 재원,그리고 인력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책당국자들은 지역개발의 바뀐 패러다임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레드오션적 사고방식에 젖어 지역개발의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무언가를 빼내서 지방에 옮기거나,수도권 규제를 유지하면 균형개발에 기여하는 정책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균형개발을 저해하는 정책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역개발의 새로운 장을 열기를 원한다면 지역개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수도권을 보는 정책당국자들의 눈높이가 수도권-비수도권 구도의 단선적인 비교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 상대국인 일본과 중국의 수도권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수도권이 비수도권지역에 비해 인구와 공장이 얼마나 더 많은가를 시시콜콜 따지는 닫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수도권이 도쿄권에 비해 무엇이 모자라고 상하이권보다 어떤 부문에서 뒤처지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우리 수도권의 경쟁력이 도쿄나 상하이권보다 떨어지는 한 동북아 중심국가 실현은 불가능하다. 일본과 중국의 수도권-비수도권 격차가 우리보다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 정부는 수도권 규제는커녕 오히려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진정한 수도권발전대책은 우리 수도권이 빠른 시간 내에 도쿄권이나 베이징권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해주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