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서 성형외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K씨는 최근 유방확대 수술을 위해 찾아온 한 20대 여성을 그냥 돌려 보내야 했다. 고객이 의료용으로 허가되지 않은 실리콘 겔 보형물인 '코히시브 겔' 수술을 요구했기 때문. K씨는 정식 의료용품인 식염수 팩 수술을 권했으나 이 고객은 촉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K씨는 "실리콘 겔 수술은 불법이라고 말해도 소용 없었다"며 "오히려 다른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는데 여기서는 왜 안 하느냐는 항의마저 들었다"며 씁쓸해 했다. 무허가 의료용품인 실리콘 겔을 이용한 불법적인 유방확대 수술이 '성형 1번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나 단속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손을 놓고 있다. 실리콘 겔은 한때 유방확대수술의 보형물로 널리 사용됐으나 시술 후 터질 경우 면역질환 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돼 지난 9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국내 식약청으로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이에 따라 최근엔 기존 액상 실리콘 겔을 고체형태로 만들어 터져도 새지 않도록 한 새로운 '코히시브 겔'이 선보이고 있으나 이도 무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허가되지 않은 상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버젓이 소개=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형외과 병원들이 "코히시브 겔이 안전하고 식염수 팩보다 촉감이 우수하다"며 시술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부작용이 우려된다. 경기도 분당 소재 M성형외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코히시브 겔은 정식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고객이 원할 경우 수술해 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 강남의 L성형외과는 홈페이지에서 "통증 없이 수술이 가능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수술을 하고 있다는 강남 소재 N성형외과 원장은 "강남지역에서 개원 중인 성형외과 절반가량이 코히시브 겔로 수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안전성 검증 안 돼=이들은 코히시브 겔 수술이 기존 실리콘 겔과 달리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L성형외과 원장은 "유럽지역에서는 코히시브 겔이 유방확대 수술에서 90%가량 이용될 정도로 보편화돼 있는 등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식약청은 "코히시브 겔이 안전하다는 어떠한 임상시험 결과도 제출되지 않았다"며 불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불법제품으로 수술받은 후 부작용이 일어났을 경우 환자들이 보상받지 못하는 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구잡이식으로 수입돼=특히 코히시브 겔은 정식 수입절차를 거치지 않고 들여오기 때문에 저질 제품의 유통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L성형외과 원장은 "의사들이 주로 학회 참석차 외국에 나갔을 때 가져오거나 항공택배를 통해 개인적으로 구입한다"며 "미국 멘토사,이나메드사와 프랑스 유로실리콘사 제품이 주로 사용되나 최근엔 중국산이 들어온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코히시브 제품을 이용한 수술비는 600만∼800만원 수준으로 500만원가량인 식염수 팩 수술보다 다소 비싼 편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