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가 열린 지난 8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 회의를 주재할 노무현 대통령이 입장하기 직전에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농담을 한마디 했다. "저쪽(건너편 자리)에는 무서운 분이 다들 모였네요." 딱딱하던 회의장에 잠시 웃음이 터졌다. 대통령 자리 양쪽에는 반부패 업무와 관련있는 최고위급 공무원 20명이 10명씩 나뉘어 앉았는데 김 실장이 가벼운 말로 회의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 한 것이다. 김 실장 건너편의 경우 노 대통령 바로 옆엔 업무보고자인 정성진 부패방지위원장이 자리했다. 이어 천정배 법무·오영교 행자 장관,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윤증현 금감위원장,김종빈 검찰총장,이주성 국세청장,허준영 경찰청장 등등. 김 실장 쪽에도 전윤철 감사원장,문재인 민정수석 등 사정당국의 '빅 헤드'들이 두루 앉았다. 검찰과 경찰,금감위와 공정위,국세청과 부방위… 공무원 개인이 무서운 게 아니라 고유의 업무가 무서운 기관은 정부 내에 이렇게 많다. 노 대통령은 최근 "힘이 없다"며 '힘없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해는 간다. 여소야대에서 상당수 법률 개정·제정안에 제동이 걸리고,부동산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았던 보유세 강화는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청와대 표현대로 '누더기'가 됐다. 국방개혁을 야심작으로 염두에 뒀는데 장관 해임건의안이 상정되면서 위기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정부(행정부)는 힘을 갖고 있다. 어떤 일에,어떤 방식으로,얼마만큼 쓰느냐가 관건이다. 현행 법 아래서 공정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을 것이며,금융감독원을 지휘하는 금감위 눈치를 보지 않을 금융회사가 한 곳이라도 있을 것인가. 국세청만 해도 정치권력의 간섭이 없어져가는 지금이 더 무섭다는 게 기업들의 얘기다. 검찰 경찰에 대해서도 업무 자체는 일체 간섭않고 독립시킨다는 게 청와대의 변함없는 다짐이지만 각각 법무부와 행자부를 통한 정당한 지시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갔다"고도 했지만 추상명사로서 시장의 기능이 커졌다는 뜻이지,시장의 개별 구성원들에게 국가권력이 간 것은 아니다.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