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PB(프라이빗 뱅킹)시장을 잡아라.' 아시아가 PB부문에서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빠른 경제 성장으로 신흥 백만장자들이 쏟아지면서 PB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아시아는 고객의 비밀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비밀계좌'를 앞세워 PB의 본고장으로 꼽혀왔던 스위스를 제치고 차세대 국제센터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 '돈세탁'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스위스에서도 자금이 빠져나오는 데 반해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다는 점에서 자산관리 서비스업체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 ◆급부상하는 아시아 PB시장 중국을 비롯 주요 아시아 국가에서는 신흥 부자가 크게 늘고 있다. 메릴린치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는 지난해 230만명으로 전년보다 8.2% 늘었다. 이는 아직 북미(270만명)와 유럽(260만명)보다는 적지만 상승세를 보면 곧 이들을 추월할 기세다. 대형 은행 중에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UBS,크레딧 스위스 은행이 모두 아시아 지역에 PB 사업본부를 개설했다. 씨티그룹 HSBC 등 대형 투자은행들도 중국을 비롯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속속 사무소를 냈거나 낼 계획이다. 중소형 PB 전문 은행들의 진출도 두드러진다. 164년의 역사를 가진 스위스의 중소형 PB 은행인 사라신은 최근 홍콩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프랑스의 SG 프라이빗 뱅킹도 최근 싱가포르에 유럽고객을 위한 전담팀을 발족시켰다. UBS PB센터의 아시아 태평양 본부 책임자 캐드린 쉬는 "지금 아시아 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색하는 스위스의 명성 아시아와는 대조적으로 장기간 세계 최고의 PB 센터 자리를 지켜왔던 스위스는 최근 몇 년 새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비밀계좌' 개설이 금지된 데다 올해 7월부터는 외국인 계좌에 대한 정보 공개가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은 외국인 계좌 관련 정보를 유럽연합(EU) 내 다른 나라 금융 감독 당국과 교환하든지,이자소득세에 대해 15%의 이자를 원천징수 하든지 택일해야 한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익명의 비밀계좌가 '국제 테러자금의 온상'이며 각종 부정부패와 연루된 '검은돈의 은신처'라는 국제적인 비난에 따른 것이다. '익명과 비과세'라는 스위스가 갖고 있던 이점이 사라짐에 따라 상당수 부자들이 스위스에서 돈을 빼내 홍콩 싱가포르 등지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