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3%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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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3성에 사는 오형에게.
오형이 지난주 바로 이 칼럼(7월6일자)에서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난맥상을 지적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오형의 표현대로 서울의 동북 3성,즉 강북ㆍ도봉ㆍ노원구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이 최근 강남지역 부동산가격 폭등세를 지켜보며 느꼈을 박탈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군요.
이렇게 펜을 든 것은 강남사람을 위한 변명 좀 늘어놓을까 해서입니다.
물론 요즘 정가에서 한창 유행중인 '편지정치'와는 무관하고요.
오형! 솔직히 나는 핵심 강남사람은 아닙니다.
범강남권인 서초구에 살고 있습니다.
강북에 살던 내가 이 동네로 이사한 것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여름이었죠.맞벌이 아내가 둘째놈을 맡길 처갓집 근처로 옮기자고 해 따라나선 겁니다.
이렇듯 나의 강남행은 오형의 말처럼 '시류를 잘 타는' 사람들의 투자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생계형 강남행이라고나 할까요.
아내는 그러나 외환위기 여파로 처갓집에 아이 한번 맡겨보지 못한 채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어쨌든 황소 뒷걸음에 개구리 잡는다고 그때 산 아파트는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졸지에 부동산투자의 귀재로 통하고 있습니다.
오형!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강남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일부 투기세력(모두 강남사람이라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요)도 있겠지만 자식들 교육때문이거나 혹은 직장과 좀 더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강남을 택했을 겁니다.
강남 토박이들도 대부분 아파트 한 채 정도 유지하며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툭하면 강남사람 '조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정부 대변인인 국정홍보처장이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을 비난하면서 난데없이 강남사람들을 끌고 들어가더군요.
서울대 입시안이 강남의 일부 특권층을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는데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잘못된 부동산정책에 대한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어쩌면 희생양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정책의 실패를 서울대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말이죠.덕분에 강남사람들은 이제 공공의 적이 된 듯합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3% 약간 넘는 범강남사람들을 왕따시켜 나머지 97%로부터 표를 받아낼 수 있다면 정치권으로서도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겠지요.
이로 얻어지는 국민적 카타르시스는 보너스 정도로 생각했나 봅니다.
오형! 다음달 정부가 또다시 강력한 부동산안정정책을 발표한다지요.
부디 이번 만큼은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놔 동북3성 사람들이 더이상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동안 도매금으로 넘어간 대다수 강남사람들의 억울함도 함께 씻어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부동산정책에는 지난번 오형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반영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남을 죽일 게 아니라 강북을 살리는 쪽으로 말이죠.
오형! 그렇지 않아도 장마철 무더위로 짜증이 나는 요즘 이 글로 불쾌지수만 높이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하도 답답해 몇자 적어봤습니다.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