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으로 기대됐던 남북회담의 밤샘협상 모습이 또다시 등장했다. 이번만은 문구 하나 두고 날밤을 지새는 남북대표 간 협상은 없어야 한다는 '소박한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 11일 밤부터 12일 새벽까지 제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열렸던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초 11일 오후 7시에 예정됐던 환송만찬부터 3시간 늦은 10시에 열렸다. 저녁이라기 보다는 야식에 가까웠다. 북측 대표단은 "통일대업하는데 밥 조금 늦게 먹는 것이 대수냐"며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식사 후에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고 회담장 주변에는 밤새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담 중간중간에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긋지긋하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최종 합의문안은 날이 환하게 밝은 오전 6시 가까이 돼서야 작성됐고 비행기 출발시간에 쫓긴 북측 대표단은 합의문 발표 후 지체없이 호텔을 나서야 했다. 사실 이번 경협위는 첫날인 9일 환담에서부터 "밤에는 자는 회담, 낮에는 일하는 회담을 하자" "잠은 더 자고 성과는 더 내자" 등의 '호언'이 나오면서 쉽게 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11일 오찬 때까지만 해도 "회담 빨리 하고 저녁에는 편안히 술 한잔 하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비록 회담의 모양새가 당초 기대에 못미쳤을 뿐 회담의 '농도'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는 회담장 안팎의 평가다. 남과 북이 가진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주고받는 유무상통(有無相通)의 경협 원칙을 정립한 것이 대표적 성과다. 통일부 당국자는 "다양한 의제에 걸쳐 강도높은 협의를 진행해 건설적인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밤샘 협상의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종건 북측 회담대표의 표현대로 새로운 남북 회담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도 몇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다음번에는 깔끔한 마무리를 기대해본다. 이심기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