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아코르그룹의 저가호텔체인 '포뮬원' ]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로 2시간.북부공업지대의 중심도시로 불리는 릴(Lille)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께. 백야(白夜)현상 때문에 이제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벨기에 국경과 인접해 있고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19세기 후반부터 섬유 무역이 발달해 중개무역상들과 트럭 운전사들의 왕래가 많은 도시.유럽 최대의 호텔 그룹인 아코르가 주머니 사정이 넉넉찮은 여행객을 위해 설립한 저가형 호텔 체인 포뮬원(Formule1) 중 하나를 이곳에 위치시킨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삐걱 소리를 내는 철문을 열고 호텔로 들어섰다.


시설이라 해봐야 시골초등학교만한 3층짜리 호텔 건물에 50여대 가량의 주차시설이 전부.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도 않았지만 호텔 정문은 굳게 잠겨 있다.


리셉션 데스크는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단다.


정문 옆에 있는 음료수 자판기 크기의 자동 체크인(check-in) 기계만이 손님을 맞는다.


"언어를 선택하세요 - 예약을 하셨습니까 - 신용카드를 넣어주세요."


기계가 시키는 대로 터치 스크린을 누르자 기계는 영수증 크기의 하얀 종이를 뱉어냈다.


방번호와 함께 정문과 방문을 여는 비밀번호가 인쇄돼 있다.


영수증에 찍혀 나온 하루밤 방값은 28유로.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다.


방이 있는 층과 구역은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등 색깔로 구분해 놓았다.


기자가 묶게 될 방은 2층 노란색 구역.군대 막사를 연상시키는 좁은 복도를 지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더블사이즈의 침대 하나와 침대 머리맡 위쪽으로 설치된 2층 침대 하나.


최대 2∼3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다.


15인치 정도의 브라운관 TV와 TV 밑에 설치된 붙박이형 책상,조그마한 세면대가 편의 시설의 전부.호텔 치고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침대와 이불만은 깨끗하고 편안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각 층에 3개씩 설치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신혼부부에게는 절대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 호텔은 장거리 자동차 여행자나 트럭 운전사들에게는 집처럼 편안한 호텔이다.


밤 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하루밤에 100유로가 넘는 호텔가격은 부담일 수 밖에 없을 터.아코르 그룹은 할 수 없이 트럭에서 눈을 붙이던 이같은 호텔 비고객(non-customer)들을 잡기 위해 지난 1985년 원가를 대폭 낮추고 꼭 필요한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포뮬원 호텔을 출범시켰다.


이렇게 아코르는 새로운 개념의 호텔 시장을 만들어내 전세계 12개 국가에 373개 호텔(2만8559개 방)이라는 블루오션을 창출했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지역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브라질,일본 등지에도 진출했다.


저가형 호텔이라는 개념 만큼이나 마케팅 방법도 독특하다.


호텔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적립식 카드 마케팅이 특이하다.


23유로를 주고 2년 유효기간의 카드(Formule1 Loyalty Card)를 사면 하루밤에 1.5유로씩 할인해줄 뿐 아니라 15번을 사용하면 하루밤의 무료 숙박권을 제공한다.


다음날 아침 프론트데스크 앞에 차려진 10평 남짓한 식당에서 기자와 함께 빵과 우유로 간단한 식사를 즐기던 청년 사업가 장 삐에르 씨는 "포뮬원은 비행기로 따지면 이코노미석에 해당한다"며 "모든 사람이 비즈니스석의 서비스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웃었다.


릴(프랑스)=유창재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