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식 <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던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돼가고 있다. 그간 언론의 주도하에 성급한 진단과 대책이 난무했지만,이제는 놀라고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챙겨야 할 때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이미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켰고,정부도 국방부를 중심으로 민간 전문가가 포함된 범정부 차원의 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 두 기구 모두 장병 인권과 복지 개선,새로운 병영규범의 정착을 통해 강한 군,밝은 병영을 만드는 일에 목표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장병 인권 상황의 개선은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간 체계적 연구와 정책화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차제에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거론되는 병영환경 개선 과제의 상당부분이 국가안보에 대한 전략적 고려와 병역제도 등 큰 틀의 변화를 요구하며,대규모 예산이나 충분한 기초연구가 확보돼야 추진이 가능한 방대한 사업이라는 점이다. 정책당국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긴 하지만 특단의 대책에 익숙한 국민들 입장에서는 너무 큰 그림이 미덥지 않을 수 있다. 당정 논의의 중심에는 GP 사건을 포함한 최근의 군 사건 사고가 인권과 복지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귀납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큰 틀의 포괄적 접근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이며 시급한 사안을 가려낸다거나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사건의 본질로부터 출발하는 연역적 접근도 효과적일 것이다. 군 수사당국이나 국회 조사특위 발표에 따르면 GP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복무 부적응 가능성이 큰 병사가 가혹한 여건의 GP 근무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런 결론이 문제를 축소하고 군 당국의 책임을 면탈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병사의 복무 부적응 상황은 이상 성격과 같은 개인적 소인에 국한된 사안도 아니고,따라서 군의 책임 범위가 축소될 수도 없다. 넓은 의미에서 복무 부적응이란 개인과 군 조직 환경 간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여기엔 의ㆍ식ㆍ주 등의 물리적 환경으로부터 병사에 대한 인식과 처우,정신적ㆍ육체적 건강 관리,여가 보장,자기 계발 욕구 충족 등이 직접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병영문화나 병역제도,민ㆍ군관계에도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복무 부적응' 문제의 해소를 정책의 중심에 놓고 보면,사건 사고의 예방 같은 당면 현안부터 장병 인권과 복지,문화의 개선이라는 큰 그림까지를 한 맥락으로 아우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병영내에서 부적응 상황에 힘겨워하는 병사들이 있다. 당사자도 고통스럽거니와 군의 정상적 임무 수행에도 장애가 된다. 이런 상황을 볼 때 현재 병영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일은 복무 부적응 상황의 발생 요인을 해소하고 부적응 병사를 적절히 보호하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징병검사의 과학화와 정교화,병사 생활경력 관리 시스템 도입을 통한 신상 관리 체계화,부적응 병사를 돌보기 위한 전문기구의 설치,현역복무 부적합 처리제도의 활성화 등을 서두르는 한편 중기적으로는 지원적 요소가 확대된 방향으로 복무형태를 다양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장병 인권과 복지 개선,병영 문화 재조형 등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워낙 무겁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면 우선 병영 내에서 고통받는 병사들을 보호하고,군의 지휘부담을 줄여 병영 운영을 정상화하는 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요컨대 시민으로서 병사의 안전한 복무를 보장하는 것이 밝은 병영,강한 군대를 만드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