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회현동의 대한전선 사옥에는 회사 간판이 없다.


1955년 창업 이래 50년 동안 전선사업이란 한 우물만 파온 옹고집 만큼 밖으로 나서는 걸 꺼려온 사풍 때문이다.


이 같은 대한전선이 최근 대변신에 나섰다.


주력인 전선사업의 성장성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사업다각화를 위해 외부사업에 부지런히 눈을 돌리고 있는 것.무주리조트,쌍방울 인수에 이어 최근에는 무주기업도시 시범사업자로 선정되면서 회사의 주력 사업군을 전선과 레저,IT(정보기술) 등으로 확대 재편하고 있다.


대한전선이 전선사업 이외 영역으로 진출한 것은 1983년 TV 냉장고 등을 만들던 가전사업을 매각한 이후 20여년 만이다.


하반기에는 전선 레저사업을 아우르는 새로운 기업이미지통합(CI)도 선보이기로 하는 등 창업 50년 만에 재도약에 나서고 있다.


◆전선,레저 양 날개로 비상


무주 기업도시 시범사업자 선정으로 2002년 무주리조트 인수 이후 역량을 키워 온 레저사업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 일대에 248만평 규모로 들어서는 무주 기업도시 '슬로밸리'(Slowvalley)는 웰빙형 종합관광 휴양지로 만들어진다.


스포츠와 타운센터,웰빙센터 등 8개 영역으로 나눠 개발되며 45홀 골프장,워터파크,캠핑장 등의 부대시설이 갖춰진다.


대한전선은 연말까지 마스터플랜 구성을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토지수용에 들어갈 예정이다.


1단계 공사가 끝나는 2009년부터 인근 무주리조트와의 시너지를 통해 대한전선의 핵심 사업분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대한전선은 최근 무주리조트 내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신축하는 등 기반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전북 고창의 선운밸리를 인수,새롭게 단장해 재오픈하는 등 레저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 하성임 상무는 "연간 1조6000억원의 매출을 내는 전선사업이 여전히 주축이지만 매출성장세가 꺾이고 있어 기업도시를 완공하면 레저사업을 향후 대한전선의 안정적인 성장기반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다각화는 진행형


대한전선은 지난 4월 홈네트워크 서버개발업체인 위즈홈을 20억원에 인수해 홈네트워크 분야에 새롭게 진출했다.


지난달에는 LG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홈네트워크 컨소시엄인 LnCP에도 가입,홈네트워크 표준화 경쟁에 대비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위즈홈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냉장고 에어컨 TV 등을 제어하는 홈네트워크 핵심 서버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월패드모니터,로비폰 등 11개 신제품을 내달부터 출시할 예정이다.


이미 지방 광역시 내 1만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 건설사들과 납품협상을 진행하는 등 시장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한위즈홈의 김순동 이사는 "홈네트워크 시장은 아직 초기인 관계로 기술적 우위와 영업력만 갖추고 있으면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며 "대한전선의 강점인 B2B 영업 노하우를 앞세워 홈네트워크 서버시장을 장악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대한전선이 지난해 인수한 쌍방울도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올해 흑자전환을 목표로 새 브랜드 이미지를 준비하고 있다.


후발 주자들에게 빼앗긴 시장점유율을 되찾기 위해 오는 21일 하얏트호텔에서 '트라이' 패션쇼를 여는 등 회심의 반격을 준비 중이다.


◆노사가 '손에 손잡고' 변신 앞장


대한전선은 재계에서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다른 기업들이 시행을 주저하는 '임금피크제'를 2003년 말 전격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회사가 전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ESOP(우리사주신탁제)를 시행했다.


특히 2003년 1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의 경우 경영악화를 고려해 노조가 먼저 제안했다는 점에서 당시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01년 5600억원이던 전선부문 매출이 2002년에는 4700억원으로 떨어지는 등 주력사업 매출이 해마다 급감해 고민하던 경영진에게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임금피크제 시행으로 대한전선은 약 10%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두면서 경쟁력을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노조와 경영진이 신뢰를 회복하면서 올해는 노조가 5년간 임금협상 전권을 사측에 위임,또 한번 놀라게 했다.


노조의 이런 노력에 대한 회사측의 화답도 파격적이다.


대한전선 경영진은 지난달 830명의 임직원 전원에게 연봉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주식을 무상으로 나눠줬다.


회사가 약 200억원을 들여 주식을 매입,직원들에게 최소 100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 규모의 주식을 무상으로 제공한 것.3년 뒤에 팔 수 있지만 최근 기업도시 선정으로 주가가 계속 뛰면서 대한전선 직원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다.


이 회사 노조는 80년대에는 6개월의 장기 파업과 본사 점거 등의 극렬 파업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파업 후유증으로 회사는 물론 노조도 어려움을 겪은 뒤 상생만이 살길이라는 걸 깨닫고 '손에 손잡고' 변신에 앞장서고 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