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장사하러 갔다가 졸지에 최고경영자(CEO) 됐습니다.' 한국 기업인으로서 최초로 중국 최대 제지그룹 CEO에 스카우트된 이원수 산둥첸밍그룹 총괄 총경리(그룹 총괄사장·59)는 14일 자신의 극적인 스카우트 과정을 이처럼 짤막하게 설명했다. 이 총경리는 "첫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 3월 신무림제지를 떠난 뒤 중국에 개인사업 차원에서 농업용 비닐을 팔러 첸훙궈 산둥첸밍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라며 "그러나 솔직히 여태까지의 명성에 먹칠을 할까 두려워 이 제안을 완곡히 고사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첸훙궈 회장의 끈질긴 구애는 계속됐다. 6월에는 직접 한국으로 이씨를 찾아왔다. "베이징에 관광이나 가자고 해서 놀러갔는데 계열사 기공식에 참석시키더니 다짜고짜 CEO로 임명해 순식간에 자산 2조원대의 대그룹 CEO가 됐다"고 극적인 순간을 설명했다. 이 총경리의 급여는 아직 협상단계지만 중국 업계 최고인 10억여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 총경리는 "직전 CEO의 경우 연봉 300만위안(4억5000만원)에 실적에 따라 연봉의 100~150%까지 추가로 받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한 회사로부터 독일의 고급 자동차인 'BMW750'을 지급받았다. 이 총경리는 취임한 지 1주일 남짓이지만 그새 몇가지 변화를 불러왔다. 사회주의 잔재인 직원들의 1열 종대 출근방식을 없앴고 한참 근무시간인 오전 9시20분께 말단직원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시행하던 '안전체조'도 폐지했다. 그는 "중국에선 아직까지 몸과 시간으로 일하는 습성이 남아있다"며 "기술력에선 한국에 떨어지지 않지만 이 모두를 꿰어서 원감절감 및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가는 관리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 총경리는 또한 "일할 능력이 있고 열정도 있지만 정년이라는 이유로 할일 없는 국내 퇴직CEO를 보면 안타깝다"며 "누구보다 중국문화와 가까운 한국 기업인들이 중국에 초대되는 일이 조만간 많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96년부터 신무림제지에서 사장 및 부회장을 지내다 올 3월 퇴직한 이 총경리는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경영능력과 성실성으로 인해 첸 회장의 눈에 들어 이달 초 산둥첸밍그룹 총경리로 선임됐다. 산둥첸밍그룹은 펄프 인쇄용지 등을 생산하는 종합제지회사로 중국 내 11개 자회사와 16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회사 전체 직원이 1만4750명이며 연 생산 규모는 220만t,지난해 그룹 총매출은 1조원,순이익은 1300억원에 달했다. 글=임상택·사진 김병언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