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과학기술계에도 시민운동이 펼쳐진다.'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해야 할 과학자들이 무슨 시민운동에까지 참여하느냐며 의아스럽게 생각하기 쉽다. 시민운동이라고 하면 정치 경제 인권 환경분야 등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이제 달라지게 됐다. 과학기술인들이 시민들과 손잡고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련)이란 시민단체 설립에 나선 것이다. 이미 발기인 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창립일까지 9월 초로 확정지었다. 발기인에는 황우석 서울대 석좌 교수 등 200여명이 포함됐다. 목표 회원 수는 1만명으로 잡혔다. 시민단체의 탄생이 마침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과학기술인들이 과실련(科實聯) 결성에 이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는 국가 과학기술정책 수립과정에서 민간 쪽의 목소리를 보다 강력하게 내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한것이다. 물론 과학기술정책 결정 과정에 과학기술인의 참여가 봉쇄돼 온 것은 아니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에서도 민간인 위원들의 활동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할 수가 없고 좀더 적극적인 활동과 기여를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나선 셈이다. 문제는 과실련이 과연 이같은 사업을 통해 우리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우리사회는 시민운동을 하기에 썩 좋은 환경만은 아니다. 숫자로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갖가지 시민단체로 넘쳐나고 있어 '시민단체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지경이다. 시민단체의 난립뿐만 아니라 운영 방식과 조직 구조 등도 자주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민단체에 시민은 없고 운동가만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실이 말해 주듯 시민들의 참여도 부진하다. 오히려 외면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민의 참여도는 이처럼 낮은 데 정치적 영향력은 매우 큰 '기형적 구조'가 우리의 시민운동이다. 어쨋든 과실련은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우선 시민단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켜야만 한다. 전문가들만이 판을 치는 조직이 돼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 지향성과 권력 유착을 차단시키고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운영 경비 등을 자체 조달함으로써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면서 권력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참여정부 들어 과학기술부총리제 도입,과학기술혁신본부 설립,이공계 출신의 고위공직진출 확대 등 과학기술계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을 뿐 아니라 척박한 과학인프라에서도 인간 배아줄기세포추출 등 세계적 성공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계도 이처럼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할 때가 됐다는 측면에서 과실련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시민운동의 힘은 바로 고고한 정책보다는 시민을 파고드는 데서 나온다는 점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