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목 숲에 멈춘


소나기는


바람이 밑둥을 지나자


후두둑


뛰어 내린다




푸른 언덕엔


젖은 강아지처럼 몸을 터는


상수리 나무


-박현수 '비온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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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한 습기를 품고 밀려오는 바람.어둑해 지는 공간을 가르며 수런수런 떨어지는 빗방울들.메마른 땅이 젖어들면서,훅 끼쳐오는 흙냄새.구름 사이로 다시 해가 얼굴을 내밀면 새옷입은 아이처럼 드러나는 눈부신 세상.어릴적 시골에선 유난히 소나기가 많이 왔다.


함석지붕을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체 모를 슬픔이 가슴가득 스며들곤 했다.


소나기 오기 전과 온 후엔 판이한 세상이 펼쳐진다.


그런 비의 감흥은 이제 사라졌다.


요즘 비는 대개의 경우 교통체증과 불편함을 의미할 뿐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