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BIH라는 영국계 펀드는 이 같은 논란을 촉발시킨 최근 사례다.BIH는 브릿지증권의 경영권을 인수하자마자 투자자금 회수 작업에 들어갔다.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사옥을 매각하고 과도한 배당을 실시했다.‘유상감자(유상감자)’라는 생소한 수단을 동원해 투자 밑천을 거둬가기도 했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은 그 반대의 경우다.GM은 국내에서 주인을 찾지 못해 법정관리 상태에 놓여 있던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뒤 불과 2,3년 만에 과거 못지않게 실력있는 기업으로 회생시켰다.일자리도 많이 만들어냈다.그 결과 대주주인 GM 자신의 이익도 늘리고 한국 경제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가지 상반된 사례는 외국인 투자가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 언제 독이 되고 언제 약이 되는 것일까? 일정한 기준은 없고 경우에 따라 다르다. 동일한 외국인 투자자가 인수한 두 개의 기업이 우리 경제에 서로 다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독과 약이 동전의 겉면과 뒷면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국내 주식시장을 예로 들어보자.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국내 기업의 주식 거래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5월말 현재 42%다. 전세계에서 헝가리 핀란드 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외국인은 우리나라가 주식시장을 개방한 이후 국내 경기가 좋든 나쁘든 꾸준히 국내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왔다. 올해 들어서도 5월까지 주식을 판 금액보다 사들인 금액이 2600억원가량 많았다. 이처럼 꾸준히 국내 주식을 사줌으로써 외국인은 주가를 안정시키고 주식시장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은 높은 이익을 좇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 헤지펀드다. 헤지펀드는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을 주 무기로 하는 매우 공격적인 펀드로 수년 전부터 신흥시장인 아시아나 남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투자매력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이들 시장을 등지는 게 헤지펀드의 생리다. 눈치 빠른 헤지펀드가 보따리를 싸면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도 이들을 좇아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은 주가는 물론 금리나 환율에도 충격을 줘 금융시장 전반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최근 GM과 포드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큰 손실을 입은 헤지펀드가 고객들의 환매(還賣) 요청이 빗발치자 이들에게 돌려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주식을 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기도 했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커지면 국내 주식시장이 일견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해외 요인으로 인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 활성화는 국내 기업들의 체질을 바꿔 놓기도 한다. 과거 한국 기업은 사업 자금을 대주는 주주들보다는 적은 지분으로 전권을 휘두르는 사주(社主)의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분을 늘리고 경영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영진이 사주 이외 주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당을 늘리며 경영 내용을 투명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한 상시적 인수·합병(M&A) 위협에 국내 기업 경영진이 바짝 정신을 차린 결과다. 그러나 '외국인이 경영권을 차지하면 주가가 오른다'는 후광효과를 이용해 치고 빠지기 식 투자를 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상적인 기업 경영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을 대표하는 상장 기업 2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13%가 외국인투자자의 경영 간섭으로 애를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이 가운데 48%가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미래 기업 가치를 높이는 설비투자 대신 당장 주주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독인지 약인지는 사례에 따라 다르다. 더욱이 국내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국내 투자 주체가 주식투자를 많이 해 우리 증시의 확실한 주인이 된다면 외국인 투자의 독을 줄일 수 있다. 가계가 적립식펀드 같은 간접투자상품을 건전한 재테크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주식투자를 신중히 늘리는 것이 그 방안이다. 기업은 투기성 외국자본에 허점을 보이지 않도록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투기성 외국자본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시스템과 적정한 규제 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지헌 선임연구원 jhba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