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비결이 뭐 있나. 마음을 편히 갖으니까 그렇지. 요즘은 정신도 맑아지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16일 오후 서울 평창동 김흥수미술관. 지팡이를 짚고 모습을 드러낸 김 화백(86)은 기자가 "몸이 다시 좋아지셨다면서요?"하고 묻자 마치 회춘(?)한 듯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이처럼 답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그는 휠체어 신세였다.


3년 전 세 차례에 걸쳐 받은 척추수술 때문이다. 걷지도 못할 뿐더러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 병상을 딛고 일어났다. 신기하게 몸이 좋아지면서 다시 붓을 잡았다. 이달 초에는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내 소전시장에서 열린 개인전에 최근 그린 그림들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하모니즘'(harmonism) 시리즈로 잘 알려진 몇 안되는 '스타급 원로화가'인 김 화백이 화단에 '컴백'한 것이다.


그의 '하모니즘'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화폭을 둘로 나눠 한편에는 여성 누드의 구상을,다른 한편에는 추상을 그려 '독보적'이라는 평을 받아 왔다. 미술계에 복귀한 김 화백은 요즘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한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바로 춘화(春畵)다.


"그런 것(섹스) 초월할 나이도 됐고 감각도 살아있기 때문에 잘 그릴 자신이 있지. 춘화는 혜원(신윤복)것도 있고 시도한 화가도 많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테크닉(기법) 이런건 관심없고 어떻게 하면 예술성을 높이느냐야."


옆에 있던 김 화백의 부인이며 제자인 장수현 관장이 거든다. "선생님이 요즘 에로물 비디오를 자주 보시면서 영감을 얻고 있다"고 귀띔한다. 내년이면 김 화백이 한국 나이로 미수(米壽)다. 내년에 춘화로 미수 기념전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김흥수미술관은 개관한 지 1년반도 지나지 않은 2003년 8월에 문을 닫았다. 미술관을 운영할 돈이 없어서다. 얼마전에는 미술관과 그림 20점을 담보로 우리은행을 통해 68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려다 실패했다. 미술품을 담보로 한 ABS 발행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경에도 불구,붓을 다시 잡은 것을 보면 김 화백은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장 관장은 "척추수술을 받기 직전부터 선생님은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다"며 "그런데도 요즘 돋보기로 캔버스를 들여다보며 하루 4~5시간씩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