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늦깍이 작가 류경(39)씨가 첫 소설집 '내 이름은 월아'(열림원)를 펴냈다. 책에는 표제작을 비롯, '작문 숙제''칼날과 향수''화생의 춤'등 모두 8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의식은 '삶의 근원적 가치'에 대한 성찰이다.작가는 과거의 기억속에 붙들려 상처 입고 있는 존재들의 방황과 근원적인 상실감을 먼저 그려내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생의 의지를 얹었다. '작문 숙제'의 주인공은 어린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외삼촌집으로 보내진다. 열한 살의 나이에 목도한 외삼촌의 자살,그리고 자신을 내보낸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절망은 주인공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정류장을 떠도는 것 같은 삶을 살던 주인공에게 내려진 처방은 작문숙제.지난날을 하나하나 떠올려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주인공은 차츰 유년 시절 따사로웠던 고향의 집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표제작 '내 이름은 월아'는 관현악단에서 해금을 연주하는 여자단원 이희수가 불현듯 전생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내용이다. 어느 날 신문의 사진을 보던 그녀는 일제시대 한 지방도시의 '권번'이라는 기생집 마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월아'라는 기생이 바로 전생의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전생과 마주치는 전율 속에서 그녀는 이상하게도 전생이 변질되어 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연주하는 해금은 전생과 현생의 간극을 이어주는 매개체 구실을 한다. 애절한 해금의 가락은 시간과 역사를 거슬러 '까마득한 곳'의 존재성을 회복하게 해준다. 고구려벽화 '무용도'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춤을 복원하려는 무용수의 치열한 예술혼을 그린 '화생의 춤' 역시 자신이 속한 시간의 리듬을 벗어나 보다 근원적인 것에 가 닿으려는 갈망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아름다움 속에 진실이 있다는 믿음은 변함없지만 깊은 우물 속에 달처럼 잠겨 흔들리는 이 삶을 어떻게 건져 올릴 것인가. 내 글은 두레박이고 싶다"고 썼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