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신임 두산그룹 회장에 들어 본 경영전략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박용성 신임 두산그룹 회장은 언제나 명쾌하다.
거침없는 화술엔 군더더기가 없다.
박용오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회장에 추대된 그는 19일 제30회 대한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가 열리고 있는 제주 신라호텔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향후 그룹의 운영방안을 시원시원하게 밝혔다.
박 회장은 "순간의 사소한 잘못으로 기업이 큰 일이 날 수도 있는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경영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진로 인수에 실패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는 그는 "앞으로 먹을 게 있으면 더 먹겠다"고 말해 추가적인 기업 인수·합병(M&A)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회장직 승계가 결정된 과정은.
"경영승계에 대한 얘기는 올 연초부터 나왔다.
사실 지난 5월 결정됐다.
창립 109주년 기념일인 다음 달 1일에 맞춰서 하려고 서둘렀다.
신경을 썼던 국제유도연맹(IJF) 선거도 대세가 기울어 나를 제외한 10명의 이사 중 8명이 나를 지지해 한숨을 돌렸다."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직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면서도 그룹을 챙길 수 있겠나.
"자신 있다.
할 수 있다.
대내외 명함이 60여개라지만 그 가운데 내가 직접 챙기는 건 10개도 안 된다.
시시콜콜하게 콩 한쪽 세는 것까지 관여한다면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겠지만 회장이 이사회에서 큰 틀을 잡고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해 나가면 어려울 것이 없다."
-박용만 부회장이 2010년 그룹매출 100조원 달성을 얘기했는데.
"그런 얘길 했다고? 그놈이 더위 먹었나.(웃음) 그 정도는 안 되지.올해가 11조원인데…. 내년 4월이면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으로 재계 10위로 올라서는 정도다. 현재 그룹 매출의 반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의 사업구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동안 구조조정 과정에서 먹고 마시는 사업은 다 팔았다.
지금은 중후장대 산업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서 사업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해외에 승부를 걸어야 할 때다.
'그룹이 바뀌었으니까 (경영자도) 바꿔서 계속 한번 해보자'고 해서 외국을 다룰 줄 아는 내가 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중후장대 산업의 성장 전략은.
"원자력 발전설비는 두산중공업이 세계에서 제일 싸게,제일 좋은 제품을 만든다.
그런데 원천기술이 없다.
작년 중국 관련시장에 진출하는 데 실패한 까닭이다.
뼈 아프다.
원전설비의 원천기술은 미국 기업이 두 개,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기업이 하나씩 보유하고 있다.
두산기계를 2년간 경영해 봤는데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정말 어렵더라.핵심부품 개발에 세 번 실패했다.
한 번 실패할 때마다 30억원씩 날아갔다.
기술면에서 세계 톱으로 가고 비용은 선진국 업체에 비해 5∼10% 싸야 팔아먹을 수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기술 수준도 앞으로 2~3년 정도는 경쟁력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인프라서포트(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장비) 부문에서 해외기업도 인수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관련 업계는 메이저 3개만 살아남고 마이너는 모두 죽었다.
합종연횡을 통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이지 않으면 다 죽는다.
국내 마켓셰어를 따지는 시기는 지났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10년 뒤를 생각하면 식은 땀이 난다고 했는데 정말 몇 년간 한눈 팔다가는 큰 일 나는 수가 있다.
과거 두산이 경영하던 OB맥주도 마켓셰어가 70%까지 올라갔던 회사였다.
순간의 사소한 잘못이 회사를 완전히 망가뜨리게 된다.
이런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경영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나."
-추가 M&A 의향은 없나.
의사가 있다해도 인수자금 조달이 문제일 텐데.
"먹을 것 있으면 더 먹는다.
진로도 우리가 하려다가 못했다.
우리보다 더 써내는 쪽이 없을 줄 알았다.
8000억원인가 써냈는데….지난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당시 은행들이 서로 인수자금을 꿔주겠다며 달려들었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의 경우 제일은행이 반대하더라.2000년 말의 그룹 부채 규모가 2001년 말에 줄어들지 않으면 한국중공업을 되팔겠다고 약속하고 석 달 만에 OB맥주를 팔아 자금조달 조건을 맞췄다.
당시 제일은행 행장이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다고 했다."
-맥주 사업에 다시 진출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맥주사업은 다신 안한다.
(외환위기 직전 두산에 컨설팅을 해줬던) 맥킨지는 '늙은 회사는 도전보다 안정을 원한다'고 하더라.도전정신이 사라지면 새로운 제품을 내는 걸 게을리 하게 된다.
그래서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바꿀 것을 조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판단이 옳았다.
두산인프라코어,두산중공업 모두 블루오션 사업이다.
두산중공업이 매물로 나와서 OB맥주와 맞바꿨는데 지금 왜 레드오션으로 다시 가겠나."
제주=유창재 기자 you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