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정권의 정체성이 걸린 지상과제로 여기는 것 같다. 서울대의 통합형 논술시험 실시방침에 대한 청와대와 정치권의 적대적 과민반응이 학벌서열구조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와 총장에 대한 매도의 십자포화로 이어진 것이나 '부동산 노이로제'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부터 총리,집권여당 의원들을 가리지 않고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결국은 양극화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인 듯하다. 최근에는 과거 노태우정권의 대표적 정책실패사례로 이미 관 뚜껑에 못질이 끝난 토지공개념까지 다시 들먹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필경 양극화 현상이 더 이상 악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의를 다진 것 같다. 적어도 임기 동안 양극화 문제의 해결에 기여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런 선의가 집권당의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맥락에서 번역돼 집권여당의 곤경 탈출시도로 읽혀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국민 대다수가 거듭된 정책실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데 집권여당으로서 지지율 급락에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더욱이 과거의 호남 소외가 '호남 없이 대권 없다'는 역설로 전이된 상황에서 와해 조짐을 보이는 전통적 지지층을 되찾아 올 일에 속이 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안타까운 처지를 선선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경.포.대'란 심술궂은 조어가 입에서 입으로 번질 뿐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만한 경제회복의 전망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양극화 문제를 단선적인 분배주의 사회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양극화 문제의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제회복을 위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나오지 않고, 또 그런 게 나오더라도 곧바로 상반된 정책으로 효과가 반감되거나 상쇄되고 마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국민 대다수가 염원하는 경기회복과 진보정치의 지지기반이 희구하는 양극화 모순의 극복도 달성될 수 없다. 양극화 현상은 문민정부 말기의 외환위기로 인해 악화되기 시작한 문제인데 현 정권,아니 그 남은 임기 동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부동산 문제나 학벌사회의 폐해 문제 역시 역대정권 치고 한두 번 손대지 않은 적이 없고 또 매번 근치의 결의를 다졌지만,과연 참여정부가 특출하게 유능해서 이번에 완전한 해결을 달성할 수 있다고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이제 참여정부의 반환점이다. 혹자는 이미 레임덕이 시작됐다 하고,대통령 스스로가 출범부터 레임덕이었다 했지만,집권세력의 체면이나 국민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레임덕을 운위하기엔 너무나 이른 시기이다. 자칫 조기 레임덕이 올까 조바심에 벌여 놓은 국정과제들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정책들을 졸속으로 처리하거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자충수를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 반환점을 돌며 정권의 생애주기에 대한 현실인식을 가다듬을 시점이다. 단기적 해결이 가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냉철히 구분해 처방을 차별화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해결가능한 과제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이 취임 초 말했듯이 호시우행하며 국민에게 솔직히 호소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급히 묘방을 찾았다 자신하여 허황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설사 단기적으로 정치적 효험이 있을지는 몰라도,문제의 해결보다는 악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정치의 전선이 너무 넓어지거나 늘어지지 않도록 하고 정책의 주공을 명확히 한정하여 역량과 자원을 집중시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