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종중지위를 인정한 21일 대법원 판결은 올 3월 호주제 폐지법안 통과와 함께 양성평등의 이념을 실현한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여성이 종중의 일원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앞으로 종중을 운영하거나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여성도 종중원으로서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변화된 여성 지위 적극 반영= 이번 판결의 핵심은 변화된 여성지위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다. 부계혈통 중심의 기존 종중 문화는 사회적 환경 및 의식 변화로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 환경과 국민 의식의 변화로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 확신이 약화됐다"며 관습의 변화에 주목했다.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원칙에 따라 가족 내에서 남녀가 차별받지 않는다"는 법적 원칙도 천명했다. 변화의 흐름에 따라 관습이 바뀐 이상 종중의 존재 목적과 본질도 과거와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고,성년 여자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게 최고 법원의 판단인 것이다. ◆판결의 효력은 제한적=이번 판결은 여성권익 향상이라는 상징적 측면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또 다른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등 여성들이 지난한 법적 과정을 추가로 밟아야 하는 한계도 갖고 있다. 이번 판결은 여성종중 지위확인 여부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실제 종중의 부동산 매각대금을 재분배하는 것에는 당장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강제력을 갖지 않는 민사소송 판결의 특성 탓이다. 따라서 판결 당사자들은 별도의 분배금 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특히 법원은 이번 판결이 이미 이뤄진 종중의 의사결정에까지 소급적용하지 않음을 명백히 했다. 그동안 이에 대한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이번 판결의 취지는 향후 벌어질 수 있는 여성발언권 갈등에만 효력이 미치게 되는 것이다. ◆엇갈린 반응=성인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알려지면서 여성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국장은 "호주제 폐지 등의 획기적인 제도 변화가 오늘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다"며 "이번 판결로 다시 한번 가족관계에서의 성 평등 이념을 새롭게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희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 편집장은 "여성들을 종중회원으로 인정해 재산 분할에서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유림단체들은 미풍양속인 종중 질서가 붕괴되는 것에 대해 대부분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유림단체인 박약회(博約會)의 서수용 사무국장은 "종중 구성원 자격을 무제한으로 하면 종중이 대부분 재산분할 같은 경제적 문제로만 얽히게 돼 건전한 가족질서가 자리잡기 어렵게 된다"며 "우리 사회가 망하는 지름길로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성균관 고응대 총무부장은 "대법관들이 역사와 전통을 함께 생각하지 않고 법과 세상추이만 좇아 판결했다"며 "바뀌어야 할 인습은 과감하게 개혁해야 하겠지만 종중체계는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미풍양속"이라고 강조했다. 고 총무부장은 이어 "시대흐름과 전통을 대립적으로 인식하지 말고 오히려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관우·정인설·유승호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