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 대법서 '확인도장'..딸들의 반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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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성인 남성만 종중(宗中) 회원으로 인정해 온 관습과 판례를 깨고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새 판례를 내놨다.
'딸들의 반란'이 3심에서 끝내 '성공'함에 따라 종중은 재산 처분 등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성 종중원의 의견을 동등하게 수렴해야 하는 등 변화의 물결을 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20세 이상 성인 여성에게도 종중원의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용인 이씨 사맹공파,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출가 여성 8명이 종친회를 상대로 각각 낸 종친회원 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올 3월 호주제 폐지법안 통과와 함께 양성평등의 이념을 뒤늦게나마 현실에 구현한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는 측면에서 '판례의 반란'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변화된 여성 지위 적극 반영=이번 판결의 핵심은 변화된 여성 지위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다.
부계혈통 중심의 기존 종중 문화는 사회적 환경 및 의식 변화로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종중이란 개념을 '공동선조의 분묘 수호 등을 위해 성년 남자를 종원으로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으로 규정해 왔다.
대법원은 이날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 환경과 국민 의식의 변화로 종래 관습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법적 확신이 약화됐다"며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 원칙에 따라 가족 내에서 남녀가 차별받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관습이 바뀐 이상 종중의 존재 목적과 본질도 과거와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고 성년 여자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종중의 운영 방식에 앞으로 상당한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성인 여성이 자신이 속한 종중의 회원자격을 얻게 됨으로써 종중이 총회나 대표자 선임,재산처분 등 법률행위를 할 경우 남성과 똑같이 여성도 종중회원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결의 효력은 제한적='여성권익 향상'이라는 상징성은 얻었으나 이번 판결로 재산상 이득은 얻을 수 없다.
실제 종중의 부동산 매각 대금을 재분배하는 것에는 당장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중종이 이미 분배한 재산 가운데 여성 종중원들의 몫을 받으려면 별도의 소송을 한다.
민사소송 판결에 강제력이 없는 특성 때문이다.
특히 법원은 이번 판결이 이미 이뤄진 종중의 의사결정에는 소급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부 종중이 판례를 부인하면서 여성을 배제한 채 총회를 개최하거나 대표자 선임 및 재산처분 등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엇갈린 반응=여성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국장은 "다시 한번 가족관계에서의 성 평등 이념을 새롭게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희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 편집장은 "여성들을 종중회원으로 인정하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 판결은 여성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유림단체들은 미풍양속인 종중 질서가 붕괴될 우려가 높다고 염려했다.
유림단체인 박약회(博約會)의 서수용 사무국장은 "종중이 재산분할 같은 경제적 문제로만 얽히게 돼 건전한 가족질서가 무너지게 됐다"고 말했다.
성균관 고응대 총무부장은 "대법관들이 역사와 전통을 함께 생각하지 않고 법과 세상추이만 좇아 판결했다"고 강조했다.
이관우·정인설·유승호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