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쯤 되면 서울 청담동에 있는 샴페인 바 'WR'의 앞길은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로 때 아닌 혼잡을 겪는다.


이 가게의 30여개 테이블은 이미 1시간 전 꽉 찬 상태.


경기 침체에 여름휴가까지 겹쳐 주변 술집들이 개점 휴업 상태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볍고 흥겨운 하우스뮤직이 흐르는 바 안은 요즘 유행을 한눈에 느끼게 해주는 '스타일 좋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특이한 점은 테이블의 반 이상에 샴페인잔이 놓여 있다는 것.


위스키나 레드와인 대신 과일이나 초콜릿을 안주로 시원한 샴페인을 즐기는 풍경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분위기 살리는 술 정도로 여겨져 온 샴페인이 최근 들어 강남이나 대학가에서 인기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WR'나 '샴페인'과 같은 샴페인 바가 강남 최고의 '힙(hip,최신유행)' 공간으로 떠올랐고,'타니''미스터차우''텔미어바웃잇' 등 유명 레스토랑에서는 이미 샴페인이 주류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메인 드링크가 됐다.


파스타나 샌드위치 전문점에서도 인기 메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W호텔은 샴페인 붐을 겨냥,올초부터 샴페인 '뵈브클리코'를 무한정 제공하는 주말 브런치를 선보이고 있다.


최대 샴페인 판매회사인 모에 헤네시 코리아의 박수진 마케팅 과장은 "샴페인이 국내 와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0%도 안된다"고 전제하고,"하지만 지난해 50%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하는 등 빠른 속도로 와인 고객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국내 와인 문화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소비자의 취향과 입맛이 서구화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실제 샴페인 마니아의 대부분은 몇 년 전부터 와인을 즐겨 왔고,서양 음식문화를 가까이 접했거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요리연구가 박선영 실장(벨 본느 스튜디오)은 유행의 본고장인 파리와 뉴욕의 멋쟁이들 사이에서는 전채부터 디저트까지,코스마다 어울리는 샴페인을 마시는 게 유행이라고 전했다.


샴페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객층도 다양해지고 종류도 늘고 있다.


과거 병당 9만원대의 모엣 샹동 브루트 일색에서 벗어나 8만~9만원대의 뵈브클리코 옐로,10만원대 중반의 태틴저,40만원에 달하는 크르그와 돔 페리뇽까지 다채롭다.


WR의 여상엽 사장은 "샴페인을 찾는 층은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다"며 "다만 레드 와인이 차분하고 무게 있는 재즈라면 샴페인은 가볍고 흥이 나는 하우스 뮤직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손님들의 외모나 패션이 굉장히 젊고 세련됐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와인은 거품의 유무에 따라 일반 와인과 발포성 와인으로 나뉘는데 샴페인은 발포성 와인 중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제조한 것을 말하며 알코올 도수는 12.5도 정도로 보통 와인과 비슷하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