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들에 대한 압수 수색을 허용하는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법경찰권을 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왜 지금 그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불과 한 달 전에 같은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권한 남용(濫用)을 우려하는 법무부와 재계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당정은 삼성그룹이 제기한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섰다. 공정거래법 개정이 경제논리가 아니라 재계를 손보겠다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정은 기업들의 고의적인 조사방해나 담합(談合)행위를 막기 위해선 공정위가 강제조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공정위의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한 사례는 98년 이후 7년간 불과 6건뿐이다. 이처럼 극히 이례적인 사안을 막기 위해 사법경찰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기업에 대한 압수 수색이 실시되면 개별 기업의 비밀들이 불필요하게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되고,결과적으로 경제 회생에도 부담만 줄 뿐이다. 공정위는 지금도 계좌추적권 현장조사권 자료제출요구권 등 충분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 조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기업이 있다면 검찰에 고발하면 된다. 굳이 공정위가 나서 범법행위까지 처리할 이유는 없다. 개인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의 신설은 결코 있어선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