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기자의 Art Story] 공주 전답 팔아 고려자기 사들인 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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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은 우리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긴 겸재 정선,추사 김정희,단원 김홍도의 A급 미술품을 많이 갖고 있다.하지만 간송미술관이 뛰어난 고려자기도 다량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우선 국보로 '청자기린형향로'(65호)를 비롯해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66호),'청자압형수적'(74호),'청자원형연적'(270호)등 4점을 소장하고 있다.보물도 '백자박산향로'(238호),'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286호),'청자상감국모란당초문모자함'(349호)등 10여점에 달한다.
간송은 수준높은 고려자기들을 1937년 2월 도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존 갯스비라는 영국 소장가로부터 일괄 인수했다.그런 행운(?)을 잡게 된 경위는 이렇다.
25세 때 도쿄로 건너 온 갯스비는 고려자기의 아름다운 빛과 형태에 반해 틈틈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 사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주 한국으로 건너와 골동상을 다니며 수집에 열을 올렸다.
어느 해에는 섣달 그믐날 비행기로 날아와 한 골동상인에게 "내가 부탁했던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과 '백자박산향로'를 꼭 사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골동상인은 그의 열정에 감동해 소장가인 고관집을 방문해 두 점을 가져와 갯스비에게 넘겼다.
그러자 그는 골동상인에게 후한 사례를 한 후 그날 밤 비행기로 도쿄에 갔다고 한다.
갯스비는 이런 식으로 30여년간 최고급 고려자기만을 수집해 세계 제일의 고려자기 소장가가 됐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젊은 군인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2·26사건'이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군국체제로 돌변해 중국을 침략하게 된다.
일본이 곧 영국 미국과 전쟁을 벌여 패전할 것이라고 예견한 갯스비는 소장품을 모두 팔고 본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간송은 도쿄에서 활동하는 골동상인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되자 그의 소장품을 확보하기 위해 도쿄로 즉시 날아갔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간송은 갯스비의 저택을 방문해 한국미술품을 오랫동안 수집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소장품을 내게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간송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갯스비는 "훌륭한 고미술품을 많이 수집해 세상에 널리 소개해 달라"는 부탁만 하고 소장품 일체를 넘겨줬다.
그는 '청자양각모란문함'과 '청자향함' 등 두 점만 기념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간송은 갯스비로부터 최고급 고려자기를 일괄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갯스비로부터 인수한 고려자기가 몇 점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미술관측도 이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다만 간송은 갯스비 소장품 인수를 위해 공주에 있던 5000석지기 전답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고 한다.
다음은 고미술학자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혜곡(蕙谷) 최순우(1916~1984)가 생전에 들려준 증언.
하루는 간송댁에 놀러갔더니 간송 어머님께서 간송을 앉혀 놓고 "아무리 미술품이 소중하다고 해도 어떻게 공주에 있는 전답을 전부 처분할 수가 있느냐"며 야단을 쳤다.
그러자 간송은 "어머님! 제가 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저를 믿어 주십시요"라며 어머님의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간송 나이 31세 때의 일이다.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