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편지'를 본 적이 있나요? 여주인공 최진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골을 잣나무 밑에 뿌리던 장면이요. 몇 해 후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가 그 나뭇가지를 잡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국내에 수목장(樹木葬)을 처음 도입한 고려대 변우혁 교수(환경생태공학부·57).그는 요즘 수목장을 알리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지난해 9월 스승인 고 김장수 고려대 교수의 장례를 주도해 수목장으로 치른 후 생긴 변화다.


국내 임학계의 거두였던 그의 스승은 평소 아끼던 50년생 굴참나무로 돌아갔다.


나무에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작은 표지가 붙여졌다.


마지막까지 생명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노(老) 학자의 '간결한' 자연 회귀가 알려지자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수목장림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산을 내놓겠다 등의 전화가 빗발쳤어요. 허례허식으로 가득찬 이전의 장례문화에 염증을 느낀 이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스승의 장례식 이후 수목장 보급은 변 교수에게 '필생의 사업'이 됐다.


영화 '편지'는 수목장이란 단어조차 생소한 이들에게 해주는 단골 레퍼토리.수목장 활성화 방안 연구는 이미 완성 단계에 와 있다.


"죽어 나무 거름이 되고 나무로 동화(同化)되는 것이니까 사람과 자연이 상생하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공간 활용률도 좋아요.나무 한 그루에는 한 사람이 안장되지만 가족이나 친구,동문 등도 함께 묻힐 수 있습니다."


변 교수는 2003년 학술대회 참석차 방문한 독일에서 수목장을 처음 접했다.


당시 독일의 몇몇 회사가 수목장의 원조격인 스위스 '프리드발트(friedwald)'사로부터 특허사용권을 얻어 한창 보급에 나서던 때였다.


프리드발트는 스위스의 전기 기술자 우엘리 자우터(Ueli Sauter·64)가 1993년 창안해 유럽특허를 받은 등록상표다.


"우리나라 화장률은 50%를 넘어서는 등 성공했지만 문제는 화장 이후이지요. 국토를 파헤치며 우후죽순 들어선 납골당이 오히려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등 부작용이 큽니다."


그 대안이 수목장이라는 게 변 교수의 믿음이다.


실제 최근 설문 조사에서도 수목장 선호도는 7점 만점에 4.87점을 보인 반면 납골당은 4.27점에 그쳤다.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와 유골은 멀리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수목장 개념을 관련 법에 녹여내지 못한 법 규정이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2001년 제정된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로는 수목장이 일반 묘지처럼 취급될 오류가 있어요." 수목장을 잘 가꿔진 '숲'으로 봐야지 일반 장묘 시설로 봐서는 수목장림 확보와 조성이 원활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납골당이나 공동묘지와 같은 일반 장묘시설은 운영 자격이 종교법인이나 재단법인으로 한정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현행대로라면 편의시설까지 설치 가능해 시설이 없는 순수한 수목장의 의미도 훼손된다.


"해마다 20여만기의 묘지와 개인 납골묘가 새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전 국토가 포화 상태가 되는 2012년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목장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변 교수는 우선 산림 조성이 잘 된 국유림이나 지자체 소유 산림을 선정,시범 수목장림으로 운영한 뒤 점차 개인 산주의 참여도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관련 공청회도 26일 서울시청에서 개최한다.


"수목장은 자연 회귀 정신의 상징입니다. 언제든 망인을 찾아가 추모할 수 있어 남겨진 이들의 정서와도 잘 맞고요. 바야흐로 수목장 시대입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