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동네슈퍼에서 유일하게 10년 전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생활용품이 바로 쓰레기 봉투다. 쓰레기 종량제가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된 1995년 1월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20ℓ짜리 봉투 1장을 270원에 팔기 시작한 뒤 지난 10년 동안 변화가 없다. 10년 전보다 인하된 곳도 있다. 강남구는 당초 300원이었던 봉투값을 서초구 수준인 270원으로 내렸다. 이 같은 현상은 쓰레기 봉투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는 해당 구청이 주민 편의를 내세우며 한 해 수십억원의 적자를 자체 재정으로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잘 사는 곳일수록 봉투값이 싸다'는 이른바 '부익저 빈익고'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부산 부산진구의 20ℓ 쓰레기봉투 값이 900원으로 가장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고 25일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 중 부산이 쓰레기 처리 비용 부담이 큰 데다 다른 지자체에 비해 처리 비용을 봉투값에 상대적으로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남 곡성은 160원으로 가장 쌌다. 25개 구의 평균가격이 348원으로 광역지자체 중에서 가장 싼 서울도 구청별로는 편차가 컸다. 이 중 강동구의 봉투값이 400원으로 최고 비쌌다. 같은 양의 쓰레기를 버릴 경우 강동구 주민들의 가격부담이 서초ㆍ강남구 주민보다 48% 많은 셈이다. 종로ㆍ강서ㆍ도봉구의 경우 380원이다. 특히 20ℓ짜리 사업장용 봉투는 서초구가 290원인 데 비해 성동구와 광진구는 470원에 달했다. 최근 쓰레기 처리 비용이 높아지면서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구청이 봉투가격 인상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구청 간 봉투값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광역시도 부산에 이어 인천이 620원인데 비해 광주는 470원,대구는 430원을 기록하는 등 들쭉날쭉했다. 쓰레기 봉투가격은 지자체가 쓰레기 처리 비용과 쓰레기 봉투 판매수익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적자폭을 어느 정도 감수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전국 지자체의 쓰레기 봉투값 재정자립도는 평균적으로 30% 선에 불과하다. 나머지 70%는 다른 세수로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 모 구청 청소과 관계자는 "수지를 맞추려면 2배 이상 올려야 하지만 주민 반발이 심해 쉽지 않다"며 "구청장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쓰레기 봉투값을 둘러싼 지자체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가 시범사용 중인 생분해성 쓰레기 봉투를 다른 지역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며 "봉투값 결정권을 가진 지자체에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되지만 가격 현실화를 미룰 경우 적자폭이 한꺼번에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생분해성 봉투의 원가는 일반봉투의 4.3배에 달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