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가 과거 정·관·재계와 언론계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불법도청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그 도청자료로 알려진 테이프가 유출되면서 불거진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고 있다. 선거자금 제공을 둘러싼 정치권과 기업,언론의 부적절한 행위가 알려지면서 이에 연루된 삼성그룹이 어제 대국민 사과성명까지 내놓았다. 이로 인해 사회 전반의 심각한 혼란이 야기되고 국민을 불안속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정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물론 불법도청 자료는 그 진실 여부를 떠나 내용이 몹시 충격적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하고,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단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무엇보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작 사안이 본질이 파묻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일의 발단은 국가정보기관이 도청이라는 불법적 행위를 통해 수집한 자료가 불법적으로 바깥에 빼돌려짐으로써 비롯됐다. 그런 점에서 우선적으로 규명되어야할 것은 불법 도청의 여부이다. 도청은 분명한 불법인데도 옛 안기부가 광범위하게 이를 자행했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민주사회의 근간이자 헌법에 보장된 통신비밀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서 불법도청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더구나 도청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전 국정원 직원은 휴대전화 도·감청도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지금까지 휴대전화 도청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통신회사나 정보기관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일관했지만 이 또한 믿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불법 도청된 내용이 불법 유출됐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국가정보기관의 자료가 불법적으로 외부에 빼돌려진데 그치지 않고,심지어 그 테이프를 거액에 사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삼성그룹측은 밝혔다. 어쩌다 국가정보기관의 기강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유의해야할 것은 이번 일이 가져올 경제에의 파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깊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당에 자칫 과거의 정경유착이 기업을 더욱 옥죄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기업의욕을 꺾는 방향으로 확산되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