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경영'으로 평가받는 독일 재계에서 대형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반도체 회사인 인피니언 및 코메르츠방크 등이 대표적으로 전·현직 임원들이 성(性)매수 공금유용 뇌물수수 돈세탁 혐의에 줄줄이 연루돼 모럴 해저드(도덕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달 초 불거진 폭스바겐의 비리는 전통적인 노조의 경영참여 구조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회사 경영에 노조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노조간부들에게 최근 2년간 총 78만유로(9억3600만여원)의 호화외유 및 성(性)제공 비용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폭스바겐 노사협의회는 노사대표 각각 9명 및 주정부 정치인 2명 등 모두 2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협의회에서 근로조건 해고 채용 등 노사간 주요 쟁점사항을 결정해왔다. 노조가 향락성 외유경비를 제공받고 어떤 반대급부를 회사측에 줬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노조의 경영참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차기 총리로 유력한 안겔라 메르켈 기독민주연합(CDU) 총재는 폭스바겐처럼 산별노조에 맡기던 노사협상권을 개별기업 노조에 부여하는 방향으로 관련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폭스바겐은 이와 함께 해외사업담당 임원의 공금유용,사규를 어긴 임원 임기보장 및 보수지급 등으로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 인피니언의 메모리 사업을 이끌어 왔던 안드레아스 폰 치체비츠 사장은 부품 공급업체에 자동차경주 후원에 나서도록 종용하고 자신은 홍보대행사로부터 25만9000(3억여원)유로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폰 치체비츠 사장은 물러났지만 인피니온은 이미 1년 전에 제기된 뇌물수수설을 덮어두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코메르츠방크 인사담당 임원은 러시아 공기업 민영화과정에서 횡령된 자금을 세탁해준 혐의로 당국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주 사임했다. 자금세탁에는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등의 은행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김호영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