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11) 건국대병원 수술팀장 우진하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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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호사,무영등(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전등)이랑 신경치료기 점검해 봐.점심은 좀 있다 먹자고.며칠 있으면 진료 시작인데 빨리 준비해야지."
다음 달 1일 개원하는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수술실을 찾은 지난 23일.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이곳에서 20대 여자 간호사들 가운데 중년 사내가 걸쭉한 말투로 지시하고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술팀장인 우진하 간호사(45).
"수술실은 생명을 다루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개원에 앞서 빠진 것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해야 합니다."
팀장 자리에 올랐지만 그동안 여성만의 영역이던 곳에서 생활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눈에 잘 띄어 항상 시선이 집중돼 고충이 많았지만 직업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이겨 나갔다.
아직도 간호사 10만명 가운데 남자는 500명에 불과할 정도로 간호사는 여전히 여성의 영역이다.
간호사 경력 17년째인 우 팀장이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 때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23세의 나이로 뒤늦게 김천간호전문대(현 김천과학대학)에 입학한 우 팀장을 보고 교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좋은 성적으로,그것도 남자가 왜 간호대에 왔냐"고 물었다.
그러나 우 팀장은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간호학에 흥미를 느꼈고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이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대부분의 병원들이 '입사지원 자격'으로 '미혼 여성'을 내걸어 취업도 못할 뻔했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교수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 끝에 몇 개 병원이 성별 제한 규정을 철폐했다.
결국 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대병원에 입사,간호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최종 합격자 50여명 중 전문대 출신은 그가 유일했다.
간호사 생활 초기에는 본연의 임무보다 '무거운 것 들어 주기'가 그의 주된 업무였다.
또 교대 근무로 오후에 집에서 쉬기라도 하면 "저 아저씨는 백수인가 봐" 하는 이웃들의 수근거림에 황당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후 거의 '청일점'으로 경력을 쌓아온 우 팀장은 "환자의 절반은 남자인데 아무리 환자와 간호사 사이라도 이성에게 말하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며 남자 간호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기기 조작이 능숙해야 하는 수술 간호사로는 남자가 더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간호사는 환자와 가족에게 자신 있는 태도를 보여 신뢰감을 줄 필요가 있다는 점도 그가 꼽는 남자 간호사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우 팀장은 현재 대학 간호학과에 1500명의 남학생이 재학 중이라는 소식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건국대병원에는 우 팀장을 포함,모두 10명의 남자 간호사가 있다.
다음 달에는 남자 간호사 모임도 만들 생각이다.
"직업에 성 영역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자신 있게 '간호사 우진하'라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