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김승규 법무장관 등 수십명의 유명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전자어음 시연회'가 열렸다. 이 행사는 기존의 종이어음 대신 인터넷 상에서 발급하고 유통하는 전자어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성 행사였다. 전자어음 주무부서인 법무부는 이날 전자어음이 5월부터 실거래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올 4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전자어음 도입 시기를 7월로 늦췄다.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약속한 정책이 석달 만에 슬쩍 바뀌었지만 이에 대해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이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취재과정에서 전자어음 서비스 개시시기가 9월로 재차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법무부는 전자어음 시행 시기를 놓고 석 달 간격으로 두 번 내리 말을 바꾼 것이다. 국민은 물론 대통령에게까지 위약과 허위보고를 일삼은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무부는 연기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기자가 연기사유를 묻자 법무부 담당자는 "전산 시스템 준비 기간을 담당자가 잘못 파악하고 5월에 시작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며 당초 6개월로 계획돼 있던 전산 작업이 늦어져 7월부터 시작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법무부 말대로 전산 작업은 시중 은행들이 각기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면이 있을 수 있다. 시스템 보안강화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전자어음 도입 발표는 거창하게 하면서 당초 약속을 수정하는 일은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예정된 시기에 시작하지 못했다면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를 떳떳이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공직자의 본분이다. 그나마 9월 약속조차 이행될지 의문이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국내 18개 은행 중에서 3∼4개 은행은 준비 부족으로 9월부터 전자어음 서비스를 시작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더구나 제2금융권은 전자어음 서비스 개시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인설 사회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