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50억원에 이르는 대형 위조CD 사고는 일부 은행원의 도덕불감증이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또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과 나아가 CD유통 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는 두 명의 고교 동창생에 의해 저질러졌다. 수법은 동일하다. 모 토지신탁회사 등 의뢰인이 CD발행을 요청해 오면 이들은 정품 CD를 발행,직접 전달하며 의뢰인들을 방심케 했다. 그러다 지난 6월 중순 1개월물을 다시 발행할 때 의뢰인에게는 위조CD 또는 가공CD(은행에 입금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발행한 CD)를 건네주고,정품CD와 현금은 가로채는 수법을 사용했다. 토지신탁회사 등은 CD 만기일에 현금화를 위해 은행을 찾아가서야 위조CD임을 알 수 있었다. 정품CD는 명동 사채시장 등에서 현금화된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현금화된 돈을 갖고 중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흥은행 면목남지점 김모 차장의 경우 은행에서 행방추적에 나섰지만 가족까지 모두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은행 오목교지점의 신모 과장도 지난 24일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이 와중에 은행들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전혀 사고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재흠 금감원 은행검사1국장은 "은행원이 거액의 CD를 들고 고객에게 직접 건네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행태의 경우를 감안할 때 현재 유통 중인 CD 가운데 일부도 위조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5월 말 현재 CD발행 잔액은 49조원으로 이 중 38조원은 증권예탁원에 보관돼 있어 진품이지만 나머지는 위조여부를 파악해봐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CD를 보유한 고객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은행에 찾아가 보유CD의 위조여부를 문의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금융당국의 감독소홀도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기업은행 마두지점에서 300억원 규모의 CD 사건이 일어난 이후 불건전 CD거래 실태에 대해 전면 점검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채 한 달도 안 돼 유사한 CD사고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고객의 돈을 다뤄야 할 은행원이 도덕불감증에 빠져 있고,이를 통제하는 시스템과 감독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유사사례가 빈발할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지적이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