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국유기업 '철밥통' 깬다...민영화 가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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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3일 오후 광둥성 선전의 기업소유권 교역센터(장외 주식거래센터).중국 내 80여개 항공 노선을 갖고 있는 국유기업 '선전항공'의 주식 65%가 경매 매물로 나왔다.
18억위안(약 2250억원)에 시작된 경매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인수 업체는 중국 항공업계를 대표하는 국유기업인 중국국제항공과 통신 분야 민영기업인 이양(億陽)그룹으로 압축됐다.
국유기업과 민영기업의 대리전 양상을 보인 이날 경매는 중국국제항공이 예상을 뛰어넘는 거금 27억1000만위안을 제시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사회자가 낙찰을 선언하기 직전 이양그룹측이 1000만위안을 더한 27억2000만위안을 써내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중국 언론들은 이에 대해 "항공업계의 국유기업 독점이 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선전항공의 민영기업화는 중국 국유기업의 독점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정부는 오랜 관료주의와 보신주의를 걷어내고 민간업체의 창의성과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국유기업의 독점을 허무는 '철밥통 깨뜨리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 철도 전력 등 기간산업은 물론 은행 병원 출판 등 거의 전 부문에서 민영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의 독점 파괴는 풍부한 민간 자금을 국가 사업에 끌어들이는 데 1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철도 부문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중국 허베이(河北) 성의 주요 도시를 잇는 첸차오(阡曹) 철도건설 사업에는 8개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전체 공사비 19억위안 중 절반가량이 이들 민간기업의 몫이다.
저장 광둥 등지에서도 철도건설 사업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은행 부문도 민간자본 진출이 활발한 분야 중 하나다.
다음 달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저샹(浙商)은행은 저장성 13개 민영기업이 투자한 전국 규모의 상업은행이다.
이들 민영기업은 이 은행의 지분 85.7%를 갖고 있다.
민간기업이 주도적으로 만든 은행을 정부가 승인했다는 점에서 저샹은행은 중국 은행업 발전에 큰 의미를 갖는다.
중국 금융당국은 사금융이 발전하고 있는 광둥 저장 푸젠(福建) 등을 중심으로 중·소형 은행 설립을 더 허용할 계획이다.
현재 10여개 민영은행 설립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유기업 독점 깨뜨리기'에는 민영기업의 활력을 빌려 국유기업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도 담겨 있다.
지난 5월 말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창청(長城)석유는 중국석유 중국석유화학 중국해양석유 등 3개 석유 관련 국유기업의 독점 카르텔을 깬 사례다.
유전개발 정유 석유유통 등 종합 석유 관련 사업에 나선 이 회사는 특히 유통 부문에서 발빠르게 움직이며 기존 업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민영기업을 끌어들여 국유기업의 오랜 타성을 깨겠다는 중국 정부의 전략은 병원 출판 교육 등 서비스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 전역에 국유기업 '철밥통' 깨지는 소리가 울리고 있다는 얘기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