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털 비즈니스센터 전략 도입 ]


TV모니터 등에 사용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생산하는 네스디스플레이(대표 최연수)는 지난해 생각지도 않았던 싱가포르행을 전격 결정했다.


천안에 월 30만개 생산규모의 OLED 공장을 갖고 있던 이 회사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당초 천안공장 증설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이 접촉해오면서 마음을 바꿨다.


EDB는 각종 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뿐 아니라 △발달된 물류망을 통한 아시아 시장 진출 가능성 △싱가포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의 유대관계 형성을 통한 새로운 사업기회 모색 등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특히 싱가포르 은행 등과 함께 네스디스플레이에 직접 투자도 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는 EDB가 제시한 '당근'을 수용해 싱가포르에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고,EDB도 약속대로 10%의 지분출자를 했다.


네스디스플레이는 올해 말 싱가포르 공장에서 월 150만개 규모의 설비를 갖춰 OLED를 양산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수도권 규제로 돈을 싸들고 와서 투자하겠다는 외국 기업들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현지 투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외국 기업까지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가 "글로벌 경쟁에서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지 알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싱가포르"라고 극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싱가포르는 외국 기업 유치로 경제 기적을 이뤄낸 나라다.


하지만 처음부터 외국 기업을 쉽게 유치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화란 개념이 낯설었던 1960∼1970년대,싱가포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외국기업들이 많아 EDB 공무원들이 50개 외국기업을 돌면 겨우 한 곳에서 싱가포르를 방문해줄 정도였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기업 유치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외국기업들에 아시아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설명하고 파격적인 세제혜택 등을 제시했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으로 70년대와 80년대 싱가포르는 제너럴일렉트릭(GE),텍사스인스트루먼트(TI),HP 등 많은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


우리나라 안동병원이 싱가포르에 진출할 때는 단 하루만에 허가를 내줘 화제가 됐다.


하지만 EDB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중국이나 동남아의 다른 경쟁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세제 혜택이나 원스톱 서비스,인프라 확충 만으로 지속적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싱가포르는 90년대들어 기업들의 가치를 높이면서 경영비용을 경감해주는'토털 비즈니스 센터' 개념을 도입했다.


고객 가치를 높이면서도 비용을 낮추는 블루오션전략과 일맥 상통한다.


일례로 직원들의 교육이나 훈련은 기업들의 몫으로 여겨져왔지만,싱가포르는 정부 예산으로 전문인력의 직무능력 향상을 직접 지원하는 프로그램(TAP)을 만들었다.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들에 세제상 지원을 하고, 대기업들이 다른 대기업이나 중소기업과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역산업발전프로그램(LIUP)등도 진행하고 있다.


또 총 1만명의 기업가들이 참여하는 '글로벌엔트로폴리스'같은 행사를 통해 기술교류,제휴관계 구축,자금조달,시장진출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창업 기업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것에서부터 생산,물류,인적자원 관리,마케팅 등까지 기업활동의 전 과정을 EDB관료들이 원스톱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기업들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이를 통해 싱가포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토털 비즈니스 센터' 전략은 큰 성과를 냈다.


많은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몰려들었지만 싱가포르 제조업 분야의 총생산액은 1994년 170억달러(미국 달러 기준)에서 작년에는 290억달러로 불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대만의 제조업 생산액이 700억달러에서 780억달러로 늘어나는데 그쳤고,홍콩은 110억달러에서 63억달러로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싱가포르=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