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과 조흥은행 직원이 무려 850억원 규모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위조해, 진성 CD를 사채시장에서 할인(割引)한 뒤 해외로 달아났다는 것은 자못 충격적이다. 더구나 이 두 사람이 고교 동기생으로 상당한 공모(共謀)를 했을 것이란 점도 그렇거니와 은행들의 내부관리가 그토록 허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은행원들이 부정을 저지르려고 작정한다면 솔직히 금융사고를 원천적으로 막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융사고가 부쩍 늘어나는 것을 보면 사고 원인을 직원 개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로만 국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혹시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도 함께 따져볼 일이다. 실제 올들어 지금까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액은 이번 사건을 포함하면 모두 2833억원으로 작년 한햇동안 전체 사고액(1302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실정이다. 사고가 터지자 금융감독원은 CD발행과 유통과정의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한 달 전 발생한 기업은행의 CD 도난사건 이후 금융감독원이 CD 유통실태 점검중에 또다시 사고가 터진 것을 보면 감독당국의 조치가 다분히 형식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CD는 발행이 쉽고 유통량이 많은데다 무기명이란 특성까지 갖고 있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감독당국은 이번 기회에 땜질식이 아닌 근본적인 사고 예방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은행들도 내부 통제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지난 4월 412억원의 횡령사건이 적발돼 불과 한 달 전에 무더기 징계를 받았던 조흥은행에서 또 사고가 발생하고, 국민은행에서 올들어서만 은행들 중 가장 많은 13건의 사고를 낸 것을 보면 은행들의 사고 불감증이 도를 넘어섰다고도 볼 수 있다. 은행들은 사고예방을 위해 더욱 긴장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인들의 윤리의식이다. 언제부턴지 우리 사회에는 황금만능(黃金萬能) 풍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금융인들마저 정상적인 직장생활보다는 '한건주의'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금융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사고는 막기 어렵다. 금융인들의 도덕성이 무너지면 해당 회사는 물론 금융업 전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