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벌크 전문선사인 STX팬오션(옛 범양상선)이 지난 14일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이 회사는 상장으로 수천억원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지만 이를 기뻐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다. 초호황을 구가하던 벌크(건화물)선 시황이 악화되면서 선박 운용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작년 말이나 올해 초 선박시장에서 고가에 선박을 빌린 해운사들의 경우 적자운항을 하는 실정이다. "3년 호황도 이제 끝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운업계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벌크선 운임이 7개월 새 3분의 1토막으로 추락하는 가운데 그나마 버팀목이 됐던 컨테이너선 운임도 조정국면에 본격 돌입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벌크운임의 주요 변수인 철광석 물동량의 증가율이 선복량 증가율에 못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하반기에도 시황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변수에 세계적 철강 감산까지 겹쳐 벌크선 운임이 급락하는 데는 중국 변수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본격적인 철강경기 억제에 들어가면서 철광석 물동량이 급감한데 반해 선복량은 늘어나 운임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철광석 수입제한 조치를 단행한 중국은 최근엔 300개에 달하던 수입업체수를 150개로 구조조정했다. 이 같은 중국변수에 더해 철강제품 가격 하락으로 세계 주요 제철소가 잇따라 감산에 들어가 운임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반기 중 219척의 벌크선이 집중적으로 선사들에 인도되는데다 중국에 이미 수입한 철광석이 4000만t이나 쌓여 있어 운임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이런 변수로 인해 2분기 시황은 당초 예상치보다 더 악화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태일 연구원은 "3분기엔 선박 공급이 크게 늘어날 예정이지만 수요를 견인할 수 있는 요인이 없다"면서 "석탄과 곡물의 운송 성수기인 4분기에나 약간의 운임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운임도 조정국면 지난해 컨테이너 운임은 물동량 증가에 힘입어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상승 기조가 최근 꺾이면서 조정국면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2년 초부터 상승세를 보여온 컨테이너선 종합용선지수는 지난달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종합용선지수는 해운시장에서 컨테이너선을 빌리는 데 필요한 용선료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를 통해 운임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다. 컨테이너선 종합용선지수는 지난달 15일 2079.79포인트로 3년 만에 하락세로 반전한데 이어 6월 말엔 2067.8포인트,이달 20일엔 2023.5포인트까지 하락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형 선사들이 늘어난 선복을 채우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면서 운임을 떨어뜨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