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A씨의 차는 서울 논현동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정상 운행 중이었다. 정지신호가 진행신호로 바뀌는 것을 보자마자 A씨는 곧장 출발했다. 그리고 때마침 횡단보도를 지나던 사람을 치었다. 사고 당시 보행자 신호등은 파란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이 사고로 피해자는 전치 4주의 진단결과를 받았다. 보행자는 사람이 건너고 있는 데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출발한 운전자 A씨에게 전적으로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란불이 깜빡일 때 사고를 당한 경우 과연 보행자는 어느 정도의 과실이 있을까. 운전자도 안전운전을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보행자에게도 지켜야 할 안전의 의무가 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확인하지 않고 급히 출발한 것은 분명 운전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파란불이 끝날 때 무리하게 뛰어나온 것은 보행자가 사고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넜다고 보여지므로 보행자가 안전한 조치를 소홀히 한 것이다. 따라서 보행자에게도 과실이 있다. 이 사고처럼 보행자가 녹색점멸에 횡단하다 녹색점멸에 사고를 당한 경우 보행자의 과실은 10%다. 보행자가 녹색점멸에 횡단하다 적색에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보행자의 과실은 30%다. 물론 사고발생시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과실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어린이나 노인이 보행하다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사회생활상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행위능력이 통상인보다 낮으므로 5% 정도 감산된다. 이처럼 신호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의 진술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미리 막고 깔끔하고 정확한 사고처리를 위해서는 목격자를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상황에서의 빨리빨리 문화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운전할 때는 교통사고와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출발하는 운전자나 신호를 기다리기 싫어 횡단보도 불이 바뀌려는 찰나에 무리하게 진입하려는 보행자의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안전한 교통문화 정착을 위해 우리 모두 작은 여유를 갖는 것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