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박연폭도'(朴淵瀑圖)는 보기만해도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시원한 그림이다.


북한 개성에 있는 명승 박연폭포를 실제보다 두배 가량 늘려 과장되게 그렸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박진감이 넘치고 흥과 신명이 담겨 있다.


이 수묵화는 1750년경,그러니까 겸재 나이 70대에 그렸다.'인왕제색도','금강전도'와 함께 겸재의 3대 명작으로 꼽힌다.겸재는 관념산수가 판치던 시절에 한국적 미감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인 '진경산수'를 이룩해 우리 회화사에 큰 자취를 남긴 화가다.


이 그림이 바로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중 하나다.


폭포 아래에는 연못인 고모담(姑母潭)이 있고 그 기슭에 범사정(泛斯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폭포 절벽 위에는 대흥 산성의 북문에 해당하는 문루(門樓)가 있고 그 성문으로 이르는 가파른 길이 나 있다.


폭포수는 화면을 압도하는 암벽 사이를 수직으로 가르며 쏟아져 내리고 이를 좌우에서 옹립하듯 감싸고 있는 거대한 암벽의 위압적인 모습이 웅장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폭포 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려는 겸재의 의도가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이다.


실경(實景)의 겉모습을 재현하는 것보다 실경에서 받은 감명,즉 천둥 같은 폭포 소리를 수묵으로 그리려는 발상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아이디어였다고 볼 수 있다.


겸재의 작품은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완숙미가 돋보인다.


수묵의 구사나 필력이 사실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더욱 활달해져 화면에 생기를 부여함으로써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대기업 D사 회장까지 지냈던 유명 컬렉터인 L씨가 소장하고 있다.


1970년대 인사동에서 문화당이라는 고서화점을 경영하던 김창백씨로부터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김씨가 여러 차례에 걸쳐 팔지 않겠다고 하자 L씨는 정초에 인사차 선물을 사 가지고 찾아가서 "팔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서 수중에 넣었다고 한다.


'박연폭도'는 지난 4월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렸던 '조선 후기 그림의 기와 세'전에 출품됐다.


L씨는 고미술 명품뿐만 아니라 이중섭 등 근·현대 미술품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L씨는 "다른 소장품은 다 팔 수 있어도 '박연폭도'만큼은 절대로 내놓지 않겠다"며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당시 전시를 기획했던 미술평론가 이태호씨(명지대 교수)의 전언이다.


이 그림이 만약 시장에 나온다면 20억원은 훌쩍 넘지 않을까.


겸재의 박연폭포 그림으로는 현재 대작 2점과 소품 한 점이 전한다.


대작 중 한 점은 '박생연(朴生淵)'이라는 제목이 붙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이고 소품은 '박연폭(朴淵瀑)'이라고 씌어진 개인 소장품이다.


두 대작의 차이점은 가로 52cm 세로 119.5cm 크기의 지본에 수묵으로 그린 '박연폭도'가 하경(夏景)인 반면 이보다 약간 작은 '박생연'은 추경(秋景)이다.


또 '박생연'은 '박연폭도'보다 먼 거리에서 실경을 포착한 구도다.


게다가 '박연폭도'의 폭포 길이가 '박생연'보다 훨씬 길고 암벽도 장대하다.


이런 점으로 미뤄 겸재는 '박생연'을 먼저 그린 후 이를 훨씬 단순화해 나중에 '박연폭도'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두 작품 모두 제작 연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박생연'에는 60대 후반의 화풍이 엿보인다.


이에 반해 '박연폭도'는 암벽을 강렬하게 구사한 농묵(濃墨)의 '적묵법(積墨法)'이 1751년작으로 추정되는 '인왕제색도'와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박연폭도'는 '인왕제색도'와 함께 겸재의 70대 중반 노익장을 과시한 명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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