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우성(宇城) 변시지 화백(79)은 제주에서 태어나 현재도 제주에서 살며 제주 풍경을 화폭에 담아 온 전형적인 지역 작가다.


중앙 무대에서 자주 전시회를 갖지는 않았지만 제주인의 슬픔과 삶의 애환을 작가 특유의 표현주의 기법으로 드러내 주목받아 왔다.


작가의 회고전 성격을 띤 '변시지,삶과 예술'전이 오는 6일부터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기당미술관에서 열린다.


1990년 이후 최근까지 그린 미공개작과 일본 유학시절인 1944년도 작 '자화상' 등 80여점을 선보인다.


제주에서 태어나 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 수업을 받은 변씨는 23세에 일본의 광풍회전(光風會展) 최고상을 수상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6년간 일본에서 활동하다 1957년 귀국 후 서라벌예대 교수를 역임하고 75년 제주로 귀향했다.


변 화백은 황토색 바탕에 먹빛으로 제주 풍경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바다 바람 조랑말 나무 까치 해녀 등 제주를 대표하는 소재들이 먹빛의 단순한 형태로 반복돼 시간의 개념을 배제시킨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닷가의 초가,그 곁에 외롭게 바람을 맞고 있는 해송,물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해녀와 이들을 기다리는 남정네….등장 인물과 배경 화면이 인간 본연의 고독함과 불안,기다림,한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담고 있다.


제주라는 천혜의 비경은 온데간데 없고 처연한 고독과 비애감으로 가득하다.


추사 김정희의 유배 시절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반영하듯 제주에 정착해 그려 온 그림에서는 추사의 '세한도'와 같은 고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미술 평론가인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가 그리고 있는 제주도 풍경은 단순한 풍경이기보다는 제주도의 특유한 삶에 절여진 풍경이며 현대 문명에 밀려 사라져 가는 원형으로서의 고향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기당미술관은 재일동포 사업가인 기당 강구범씨가 변 화백의 작품세계를 고향인 제주에 알리기 위해 1987년 설립해 서귀포 시에 기증한 시립 미술관이다.


11월4일까지.(064)733-1586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