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지난해 12월 시작된 비정규직 법안의 국회 처리를 두고 노동계와 정부,재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1년 6개월여 동안 합의와 결렬이 반복돼온 노ㆍ사ㆍ정 간의 협상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최근의 노동운동은 극단적 폭력이 자행된 울산 플랜트노조 사건과 같이 점차 격화되고 있으며 통일중공업노조가 경영자에게 직접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등의 사건 이후 노동계와 재계 양측 모두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상생을 이뤄야 할 노사관계는 갈등과 투쟁으로 변질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악재가 더해지고 있다. 현재 노사갈등의 주요 쟁점은 비정규직,특수 고용직 문제다. 특히 최근 문제되고 있는 하도급 거래는 일반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와 같이 기업규모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업체 간의 거래를 의미한다. 노동부는 하도급 근로자의 전부 또는 일부가 원도급 근로자와 동일 장소에서 함께 작업하는 것을 불법 파견으로 규정했고, 노조는 사내 하도급 근로자의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해 줄것을 주장하고 있다. 법규에 따르면 기업은 정규직의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 한편 고용 인력을 새로운 생산 라인에 재배치할 수 있는 배치 전환권을 제약받고 있다. 이런 제약 아래에서 기업이 정규직 고용만으로 급변하는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시행돼야 마땅한 정의로운 혹은 도덕적인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닌 이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현실 경제는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전 세계적인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글로벌 경영의 확산과 고용 없는 성장이 보편화되고 있다. 세계의 각 기업은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생산 시설을 자유롭게 이전하고 있고 이미 국내의 많은 제조업체들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도 국내의 일자리가 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노사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현실이다. 정규직의 양보없이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주장은 노동 경직성을 심화시킬 뿐이며 그 결과는 모두가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겠지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의 수를 줄여 국내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시킬 뿐이다. 이미 높은 인건비와 강성노동운동 등으로 경직된 노동시장의 결과로 일자리 감소를 경험한 선진국은 노사가 함께 일자리 창출과 실업난 해소에 협력하고 있다. 높은 복지수준과 낮은 노동 시간으로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불리던 프랑스와 독일 등은 일상화돼 있던 파업과 강경 노동운동 대신 노사합의로 실업률을 낮추는 데 힘쓰고 있다. 미국은 일자리를 늘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권을 축소하는 등 친기업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도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다수의 비정규직을 고용,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세계 60개국 중 44위, 노사협력도의 경우 60위로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의 강점인 우수한 인적자원의 힘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노사간 갈등으로 소진시키는 것은 현재의 경제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현재와 같은 전투적인 노사관계가 지속된다면 기업경영의 안정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외 신용도 또한 하락해 국내 투자를 감소시키고 그 결과 고용이 감소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면서도 고용의 유연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인 만큼 실용적 관점에서 타협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