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 초입의 전나무 숲길.밤색 행자복과 주황색 행자복을 입은 삭발 남녀 59명이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고 있었다.출가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들어온 단기출가학교의 첫날.목탁소리에 맞춰 ‘석가모니불,석가모니불’을 부르며 세 걸음을 딛고 멈춰서 세 번 절하는 일이 아직은 서투르다.게다가 장대비마저 쏟아져서 염불과 삼배일보가 일사불란하지 않다.그때마다 이들을 이끄는 스님은 매정하게도 일주문에서 30m가량 떨어진 삭발기념탑 앞으로 돌려 세운다.



삭발기념탑은 이들이 삼보일배를 시작하기 전 삭발식에서 잘랐던 머리카락을 묻은 곳.무수한 겁(劫)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무명번뇌(無明煩惱)를 잘라 버리고 큰 깨달음을 이루겠노라는 다짐을 세운 곳이다.


이 삭발탑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5~6차례. 삼보일배를 시작한 지 20분 이상 지나서야 행자들은 마침내 일사불란한 대오를 갖추고 월정사 경내 팔각구층탑까지 한걸음 한걸음 마음을 모아 걷고 절하기를 거듭했다.


장대비 속 삼보일배로 온 몸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행자들.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등 떠밀지 않았건만 무엇이 이들을 단기출가학교로 이끌었을까.


이들에게 출가수행 체험의 기회를 마련한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正念·49) 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도시에서의 생활과 변화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이 삶에 대한 무상감을 느끼는 게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각 사찰의 수련법회나 템플스테이 등에 몰리는 사람들이 이를 말해주지요. 나이 드신 분에게는 오욕락(五欲樂)을 추구하며 살아온 자신의 지금 모습을 보면서 '나는 행복한가,나는 무엇인가'라고 되묻는 자기성찰이 있을 것입니다. 또 젊은 사람은 자기를 확립하고 삶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요. 수행자적 삶이란 진리를 추구하고 이상적 인격을 실현하는 것인데,그런 기본을 갖춰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시간이 바로 단기출가학교입니다."


월정사가 단기출가학교를 연 것은 지난해 9월.출가한 스님처럼 실제로 머리를 깎고 한 달 동안 출가생활을 체험하게 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폭발적 인기를 모으며 화제를 뿌려왔다.


지금까지 총 지원자는 인터넷 접수자만 1871명.팩시밀리나 우편을 통한 접수자를 더하면 2000명을 넘는다.


지난달 28일 행자생활을 시작한 5기 모집에는 60명 정원에 462명이 일찌감치 몰려 조기 마감해야 했다.


"단기출가학교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추진은 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올까' 걱정했지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지원자들이 대거 몰렸고 회가 거듭될수록 경쟁률도 높아져 지금 이 시대가 이 같은 수행에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태국 미얀마 등 남방불교 국가에서는 단기출가체험이 우리가 군복무하듯 일생에 한 번은 하는 것이 불문율로 돼있지만 한국 불교에선 없었거든요."


출가수행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사회일반의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춰 만든 것이 단기출가학교라는 설명이다.


정념 스님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했지만 요즘 한창 베스트셀러 행진을 하고 있는 '블루오션 전략'을 절집에 도입한 셈이다.


실제로 정념 스님은 산중 사찰도 사회의 변화에 맞춰 변해야 한다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내놓아왔다.


지난 2003년 11월 주지 부임 이후 월정사가 벌여온 산사영화제,'천년의 숲길 걷기대회',월정사 주지배 평창군 족구대회와 축구대회,평창군민 노래자랑대회,오대산 불교문화축전,한·중 오대산 수행 교류,미얀마 마하시수도원과 자매결연 및 수행 교류,한암대종사 수행학림,전나무 숲길 도로포장 제거 추진 등의 행사들은 손에 꼽기 버거울 정도다.


"지금까지 한국불교는 너무 산중(山中) 중심이어서 승속(僧俗)이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라,멀리 있는 물로는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묘법(妙法)도 멀리 있으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야지요."


정념 스님은 출가 직후부터 은사인 만화 스님을 모시고 참선수행의 길로 나섰고 1992년부터 12년간 상원사 주지를 맡으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행대중과 함께 안거에 들었던 수좌 출신이다.


그렇지만 현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산중의 정적인 수행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본래 조사선은 활발발(活潑潑)하고 동정일여(動靜一如)한 것이어서 삶과 수행이 따로 있지 않은데도 정적인 수행이 본질인 것처럼 돼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 자신을 던져볼 수 있어야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시장이나 막장,멍텅구리배나 노숙자·출소자 등의 삶 속에서,또는 봉사활동의 현장에서 시대정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념 스님은 단기출가학교에 들어온 행자들에게도 "진정한 출가는 보리심을 일으켜 세상의 가슴 아픈 모든 사람을 따뜻이 보듬을 수 있는 구세대비(救世大悲)의 원력을 가진 심출가(心出家),즉 마음의 출가이지 몸만의 출가를 이르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동안 단기출가학교에서 발심해 실제 출가로 이어진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정념 스님은 "한달간의 '신(身)출가'가 세간에서의 심출가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출가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라고 강조했다.


평창=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