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 > 1993년 미국 대통령에 막 취임한 클린턴을 기다린 숙제는 딸이 다닐 중학교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자신의 딸 첼시가 아칸소의 공립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항상 자랑해 왔지만, 막상 딸을 워싱턴DC의 형편없는 공립학교로 보내는 것까지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사립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이랬던 미국 공교육에 최근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미국 국립교육통계센터(NCES)가 발표한 '교육성취도 평가'(NAEP)에 따르면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점수는 1970년대 초반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인종간 격차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2002년의 교육개혁법이 큰 역할을 했다고 교육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교육개혁법의 핵심은 공교육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 및 공립학교 퇴출의 제도화이다. 미국 정부는 공립 초.중학교에 전면적인 경쟁체제를 도입했고, 9100여개의 공립학교들은 학생 성적이 일정기준에 미달하면 '부실학교'로 지정돼 주 정부 보조금이 삭감되고 인사관리권이 박탈되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면서 시행 첫해 7000개에 달하던 부실학교는 2004년 4700개로 감소했다. 새 제도는 교사들 입장에서도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교사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학생들에게 일부러 답을 가르쳐주고 심지어 부정행위를 조장하다 당국에 적발되기까지 했다. 이 사례는 스티븐 레빗이 쓴 '괴짜경제학'에 소개되기도 했을 정도이니, 미국 교사노조가 교육부를 연방법원에 제소한 것도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미국 공교육의 질적 향상은 우리나라 교육개혁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바로 시장원리 도입 및 자원투입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제도적 개선이 전제조건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비 지출은 GDP의 8%를 넘어서서 선진국 최고수준이다. 이런 실정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투자를 늘려봐야 실효성 없이 결국 건물 짓고 교사들 월급 올리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다시 말해 교사들의 능력과 실적에 대한 평가구조가 없는 상태의 재원투입은 교육개혁 정책이 아니라 자칫 교원후생복지대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후보가 교육대통령이 되겠다며 제아무리 관심을 두고 재원을 투입해도 현 구조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도 평준화의 덫에 사로잡힌 교육관련 단체들이 나름의 명분과 논리를 앞세우지만 교육수요자인 학부모들 눈에는 건전한 경쟁조차 거부하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의지만 돋보일 뿐이다. 수요자인 학생의 능력차이는 고사하고 공급자인 교사의 능력차이조차 부인하는 교육시스템이 신뢰를 회복하기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교육소비자는 이미 행동에 나서고 있고, 이는 해외유학비용의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해외유학비 공식통계는 2004년 기준 25억달러이지만 실제는 이의 3배인 71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우리나라 가계 총교육비 지출의 11%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란 국가간 제도경쟁의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부실하면 경제력이 있는 교육소비자는 고품질의 제도를 찾아 한국을 외면하면 그뿐이다. 선진 교육제도에 접할 여건이 안 되는 계층만 부실한 공교육을 강매 당하는 피해를 보게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교육에 건전한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부실학교와 교사의 퇴출구조를 제도화하고,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자원투입의 효율성을 높여 공교육의 품질을 향상시켜 가는 미국의 사례는 타산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