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碩祐 인하대 법대 교수 >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 전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빼내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로 하이닉스반도체 전·현직 직원들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 이 일이 적발되지 않아 기술이 그대로 유출됐더라면 향후 5년간 무려 12조원의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검찰은 추산했다. 기술유출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1998년 2월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반도체기술 대만 유출(피해액 6조원),2001년 6월 LG 초고속정보통신망 기술의 중국 유출(5조원),2003년 6월 현대LCD의 휴대폰 컬러모듈기술의 중국 TRULY사 유출(4조3000억원) 사건 등이 발생했었다. 삼성SDI 주성엔지니어링 등에서도 기술유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산업기술 유출을 미리 적발해 피해를 예방한 금액이 총 38조원으로 추정됐고,이를 막지 못해 입은 손해는 52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52조원이면 국내 상장기업(12월 결산 531개사)이 작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을 합한 금액(49조원)보다 많은 액수다. 특히 최근 적발된 산업기술 유출사건의 특징은 전·현직 연구인력 및 관련 임원 등 내부자에 의한 범죄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구조조정 및 인수합병(M&A) 활성화,외국인 투자확대 등으로 전문 기술인력의 자리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부와 국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2004년 10월7일 '첨단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을 입법 예고했고,2004년 11월9일 34명의 국회의원들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이하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가운데 산업기술 유출방지법은 기업의 핵심기술 유출을 막고 보안 역량을 강화하며 재판 과정에서의 추가적인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일각에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기술인력에 대한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어 수정이 필요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지만,불법적인 기술 유출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어 조문 수정작업 등을 거쳐 법이 제정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법을 만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기술 유출을 막아야 할 주체인 기업들의 준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면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무엇보다 첨단 산업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한 내부 지침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기술 개발 및 활용과 관련해 각 분야별 단계별로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매뉴얼을 작성해 현장에서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술유출과 관련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사내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최고경영자(CEO)는 물론이고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이른바 C레벨 간부들이 보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이런 대응전략은 결국 시대적 사명에 부합하는 기업 문화의 창출과 직결돼 있다. 업무 추진력과 효율성,인적 구성원 간의 신뢰 및 조직의 유연성과 함께 조직 내부의 검증제도를 통한 안전성과 완전성에 근거한 기업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산업기술 유출방지를 위해 외부의 가시적인 침입에만 대비하는 기업이 있다면,조직 내부의 강도 높은 보안 및 인사관리 제도의 운영을 제안하고자 한다. 산업기술 유출방지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 및 문제의식 수준은 해당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기업문화의 수준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