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시골에서 두부식당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하나같이 말렸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결국 일을 벌였죠." 전남 화순군 동면 천덕리 국도변에서 '달맞이 흑두부'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양덕승씨(48). 전남대에서 마케팅 석사를 딴 그는 잘나가던 삼성 맨이었다. 그랬던 그가 시골에서 식당을 차린다니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우려를 깨고 성공 일기를 써가고 있다. 식당의 하루 매출은 350만원 안팎. 검정콩으로 만든 흑두부가 건강 식품이란 입소문이 퍼지면서 식당은 종일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식당 반열에 올랐다. 흑두부 식당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양씨는 화순군 도곡면에 2호점을 개설한 데 이어 이달 하순 광주 신창택지지구에 3호점을 낸다. 양씨가 인생 항로를 바꾼 때는 1996년 7월 40세 생일을 막 넘긴 때였다. 당시 삼성화재 광주지점 보상서비스 팀장으로 촉망받는 '보험 맨'이던 그의 변신은 주변 사람들에겐 천만 뜻밖의 일이었지만 스스로에게는 예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그는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삼성에서 일을 제대로 배워서 어느 시점이 되면 나만의 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실천한 것이었다. 광주에선 처음으로 '이달의 삼성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양씨가 사표를 내자 회사는 한 달이나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았다. 당시 양씨의 직장 상사였다가 퇴직 후 대전에 '달맞이 흑두부' 식당 분점을 낸 박상호씨(56)는 "워낙 열성이고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아라'라는 특명이 떨어졌지만 '모 정당에 연이 닿아서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둘러대는 데 속아 그만 사표를 수리하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가 하필 화순에 식당을 낸 이유는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다. "화순탄광 광부였던 아버님이 동네 식당에서 막걸리를 드시면서 먹여 주시던 생두부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요. 창업 당시까지 화순에서 작고하신 아버님을 그리면서 홀로 사시던 어머님도 모실 겸 고향 땅에 터전을 잡았지요." 그는 흑두부 사업에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다. "9년 7개월을 근무한 삼성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1등이 아니면 똑같은 꼴찌'라는 삼성의 경영 철학과 몸에 밴 친절서비스 정신이 제 사업의 가장 큰 밑천이 됐습니다." 그는 '1등 식당이 되려면 식재료부터 최상품을 고집한다'는 식으로 식당 경영에 나름대로 삼성 방식을 철저히 접목시켰다. 석 달 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검은콩으로 만든 두부를 개발(?), '진짜 웰빙 식당'이라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킨 전략도 '삼성의 차별화 고급화 전략'을 원용한 것이었다. 식당은 개업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대박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물었던 시골 국도변에 도시 손님들이 몰리면서 식당 앞 주차 전쟁으로 경찰이 교통 정리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수해복구 현장 시찰차 지나가던 당시 허경만 전남지사가 흑두부 식당을 찾았으나 빈 자리가 없어 앞마당에 전선케이블 통으로 만든 간이 식탁을 이용해 흑두부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식당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검은콩이 달려 흑두부를 만들지 못할 정도였다. 양씨의 사업 파트너(?)인 부인 유순희씨(44)는 "남편은 콩 품질이 좋다 싶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이는 통에 한 되에 3500원 하던 토종 검은콩 값을 1만5000원까지 오르게 했다"며 "한 해 3억원어치의 토종 콩을 사들여 적지만 지역 농촌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흑두부 식당의 미래 비전은 뭘까. "식당은 단순히 음식 먹는 곳이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양 사장은 곧 개업하는 3호점을 이런 컨셉트에 맞는 일종의 문화공간으로 가꿔 볼 계획이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 -------------------------------------------------------------- [ 창업 희망자들에게 ] 돈은 쫓을수록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창업한다는 자세로는 안 됩니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멋있는 식당을 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음식값도 당장 한푼이라도 더 벌자는 속셈보다는 단골 고객층의 소득 수준 등을 감안해 고객의 입장에서 책정해야 합니다. '음식값에 비해 맛과 서비스가 좋다'는 인식이 심어지면 장사는 절로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하는 식당이기보다는 '그 식당에 가면 뭔가 다른 것이 있더라'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재투자를 소홀히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식당을 시작하기보다는 당장의 호구지책으로 개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아무리 잘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위기는 닥치게 마련입니다. 이에 대비해서 미리 자금을 비축하는 등 대비책을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재투자를 게을리하면 위기 때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양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