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강세장을 연출하고 있는 요즘 증시에서는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주가가 사상최고치에 육박하는 활황세에도 불구하고 개미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소위 주식투자 열풍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그것이다. 예전의 경험에 비춰보면 소 팔고 논 판 돈이나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몰려들고 증권사 객장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뤄 발디딜 틈조차 찾기 힘들어야 마땅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왜 요즘 증시에선 개미투자자들을 찾기 힘든 것일까.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데다 장기 불황의 여파로 주머니 사정이 변변치 못한 점이 큰 원인의 하나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른바 '학습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거 대박을 노리며 뛰어들었다 결국은 쪽박을 차고만 뼈아픈 경험이 주식투자라면 진저리를 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우리 증시는 최근에만 해도 두 차례나 주가가 대폭락하며 투자자들을 알거지로 만들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300선 밑으로까지 추락했던 것이 그 하나다. 대중주였던 금융주의 낙폭이 특히 두드러져 주가가 10분의 1 이하로 폭락한 종목이 속출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다른 하나는 2000년을 전후해 형성됐던 코스닥거품이 일거에 붕괴됐던 일이다. 벤처라는 이름만으로 액면가의 수십배 이상을 호가했던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해 무수한 사람들이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했던가. 이제 그들은 주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며 또다시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신 선택하고 있는 것은 전문가를 통한 간접투자다. 적립식 펀드를 통해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이 매달 4000억~5000억원에 달하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과거의 실패 덕분에 간접투자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간접투자 붐은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을 증대시켜 증시의 기초체력을 개선시키는 부수효과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면 재테크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은 어떤가. 물론 부동산도 외환위기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하락했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길게 보면 상승일로를 줄달음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도시 개발이다,재건축이다,교육 환경이 좋다 등등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뜀박질만 계속해온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대책을 내놓더라도 효험을 보기는커녕 가격을 한 단계 더 밀어올리는 핑계거리가 되고만 경험도 적지 않다. 때문에 부동산에 관한한 사두기만 하면 무조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굳건하게 뿌리내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정부가 이달 중 내놓기로 한 부동산대책이 정말 확실한 방안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늘이 두쪽 나도 부동산투기만은 잡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부동산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거품이 빠질 수 있고 투기의 대가 또한 대단히 클 수 있다는 새로운 학습효과를 만들어낼 구체적 내용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망국적 부동산투기가 근절될 수 있고 여유자금을 가진 층의 재테크 방법 역시 보다 건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