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나무판 한 장을 이리저리 구부려 만든 의자,접시 몇 개 포개 놓은 모양의 조명등,뜨거운 은물을 바닥에 흘려 그대로 굳힌 듯 보이는 두툼한 숟가락….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디자인 정서인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 새로운 리빙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절제된 단순미와 재료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자연미,뛰어난 기능성이 특징인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은 가구는 물론 식기 조명 가전 등 우리 주(住)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서서히 넓혀가고 있다.


얀 야콥슨,폴 키에르흘름과 같은 유명 디자이너 제품을 전시한 대형 스칸디나비안 가구점 오픈이 줄을 잇는 것도 이런 기류의 반영이다.


서울 한남동의 에이후스,청담동의 인넨과 서미 앤 투스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초의 6성 호텔인 W호텔도 덴마크풍의 모던한 실내장식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오프 타임,아트 앤 라이프와 같은 소품점도 강남 골목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벌써 '짝퉁 스칸디나비안 제품'이 흘러나올 정도다.


덴마크 가구 프리츠한센을 판매하는 에이후스의 박소현 실장은 "아직 외형 자체가 크진 않지만 전년 대비 매출이 2배 이상씩 늘고 있다"며 "1~2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산도 아닌 게 왜 이렇게 비싸냐는 원성을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요즘은 그 소리가 확실히 줄었다"고 전했다.


프리츠한센의 평균 가격대는 의자 하나가 200만~300만원.10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가죽소파도 있다.


이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앤트''스완'식의 개별 제품 이름을 알고 주문을 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주문 후에야 제작에 들어가는 핸드메이드 제품이어서 가격가치는 충분하다는 게 박 실장의 설명이다.


리빙전문잡지 메종의 임진미 편집장은 "이탈리안 엔틱의 독주시대가 가고 좀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북유럽풍 디자인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인기 요인을 젊은 부부들의 가정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찾고 있다.


집 꾸미기에 많은 노력과 돈을 들이는 30~40대 부부들에게는 내구성이 강하고 기능에 충실한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 입맛에 맞는다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자연환경을 떠올려 보세요.


겨울의 길고 긴 밤을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조명 가구 등 실내용품이 발달할 수 밖에 없겠지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니 얼마나 안락하고 편리하게 만들었겠어요."


인넨 디자인웍스의 김간순 대리는 북유럽 리빙 제품의 우수성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인에 대한 단순한 선호를 넘어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잘사는 복지국가,청정지역 등 북유럽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삶의 방식까지 닮고 싶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진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임진미 편집장은 "디자인 공부를 하면 할수록,많이 알면 알수록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에 빠지게 된다"며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그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 아름답다"고 말했다.


서미 앤 투스의 김서옥 팀장도 "1930년대 기능주의와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태어난 제품이 지금도 똑같은 모양으로 생산되고 있는데 전혀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다"며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볼수록 세련돼 보이는 게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net